기고/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교외에 위치한 글렌로이사 주차장엔 인사자료를 집어든 직원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55갤런짜리 드럼통에 회사의 모든 인사자료를 쏟아 넣은 뒤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회사에 불만이 있는 직원들이 ‘화형식’을 벌이는 장면처럼 보였다. 하지만 드럼통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놀랍게도 이 회사 수석 부사장 마이크 딘이었다. 그는 “상사의 평가는 상당히 주관적이었고 평가를 통해 긍정적 피드백이 이루어질 거란 생각은 환상에 불과했다”고 고백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글렌로이는 기존 평가제도를 버리기로 결정하고 사장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의 성과급과 차등 임금 제도도 없애기로 했다.
글렌로이는 왜 평가와 차등 보상을 버리기로 결정했을까?
평가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글렌로이가 이처럼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차등 보상을 위한 평가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는 확신에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에이티앤티(AT&T) 사례다. 데이비드 벌루(David E. Berlew)는 에이티앤티 신입사원 62명이 입사 첫해에 받은 평가 결과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기 위해 5년 동안 연구를 진행했다. 신입사원들의 연봉, 평가 점수, 성과 등의 자료를 5년간 분석한 결과, 첫해 회사에서 높은 기대를 받은 직원이 같은 해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면 그 직원은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확인 됐다.
어떤 직원이 첫해에 높은 기대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면 회사는 그에게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고급 과정의 교육 기회부터 고위 관리자가 멘토나 코치로 따라붙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업무를 부여받는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커져 그 후로도 그 직원은 높은 성과를 달성하고 고액 연봉과 승진 기회를 거머쥔다. 이는 결국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갖게 된다’는 ‘마태 효과’(Matthew Effect)의 전형이다.
평가와 차등 보상은 잘못된 행동 유발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 교수는 6개월 동안 하버드대학 병원에 딸린 8개의 병동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했다. 에드먼슨은 최고의 병동일수록 투약 실수가 적으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최고라고 인정받는 병동일수록 투약 실수가 더 많이 발견된 것이다. 수간호사들의 업무 능력이 뛰어날수록 투약 실수 건수가 많이 나타났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투약 실수도 많았다. 관리자의 능력과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평가될수록 투약 실수가 더 많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에드먼슨은 추가 분석을 통해 최고의 병동일수록 실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실수를 통해 학습하려는 의료진의 자발적 노력과 문화가 있음을 알아냈다. 반면 투약 실수가 적은 병동에선 실수를 보고하거나 의사 처방에 반론을 제기하면 상급자에게 질타받거나 징계받는다는 두려움이 강해서 가급적이면 실수를 감추려는 동기가 작용했다. 투약 실수를 통해 평가받고 그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실수를 감추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심리였다. 평가가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차등 보상과 조직 성과는 별개
잔 라메르(Jeanne M. LaMere)와 동료들이 ‘미시간 폐기물 서비스’를 대상으로 4년여에 걸쳐 진행한 연구 결과도 차등 보상이 성과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폐기물 수거 차량 운전기사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차등 성과급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기본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성과급 비율을 전체 연봉의 3~9%가 되도록 했다. 처음에는 성과가 향상된 듯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과급 실시 전의 보상 만족도는 26.1점이었는데, 실시 후 24.2점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기본급은 그대로 유지하고 성과급만 증가해 직원들은 전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생산성과 만족도는 비례하지 않았다.
이처럼 차등 보상을 도입하면 조직 성과가 높아질 거라고 무조건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연히 외부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해 성과가 높아졌을 때 그것이 차등 보상의 효과인지 아닌지 장담할 수 없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택-랭킹’(Stack-Ranking)이라는 악명 높은 상대평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직원들이 협력하기보다 서로를 이기려는 경쟁으로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피드백이 유일한 대안
이처럼 직원 성과 평가를 버리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그러면 직원 연봉은 어떻게 결정하죠?”라고 반문한다. 대안은 피드백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존 평가는 기껏해야 1년에 한두번 정도 이뤄지는 업무 피드백이 전부다. 2012년 어도비(Adobe)는 기존 상대평가를 없애고 코칭과 피드백을 기초로 한 ‘체크인’(Check-Ins) 제도를 도입했다. 규정된 틀 없이 관리자의 재량과 자율에 따라 언제든지 직원에게 피드백하는 방식을 운영했다. 그 결과, 이직률이 30%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시스템 통합업체 이디에스(EDS)는 자신에게 피드백해줄 사람을 직원 스스로 결정하는 파격적 방식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평가하지 않아도 일 잘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아이지엔(IGN)엔터테인먼트는 직원들이 동료의 성과급을 결정하는, 이른바 ‘바이럴 페이’(Viral Pay)를 도입해 직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자신의 일을 도와줬거나 남들보다 판매 촉진 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동료에게 토큰을 주도록 했다. 1년에 두 번 받은 토큰 개수에 따라 성과급을 나누는 방식을 취한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에서 기존 평가를 버리고 새로운 평가와 보상 방식을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평가를 강화하고 차등 보상을 확대하면 외부 경쟁력이 높아지기는커녕 불필요한 내부 경쟁만 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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