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장관 “어떻게 생각하는지 통화… 간섭 없어”
전문가 “인사권 갖는 장관 전화 자체가 부적절”
전문가 “인사권 갖는 장관 전화 자체가 부적절”
청와대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을 종용하는 전화를 직간접적으로 했다는 증언(<한겨레> 11월17일치 2면)이 나와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의심받는 처지에 빠졌다. 국민연금은 8월말 현재 기금 규모가 543조원, 가입자수는 2177만명에 이른다.
문형표 전 장관은 17일 자료를 내어 “합병 건에 대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에게 쟁점 사안과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통화한 바는 있으나 찬성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에 어떠한 간섭을 할 수도 없고 하여서도 아니된다고 생각하며, 당시에 간섭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 전 장관의 이런 해명과 달리 복지부 장관이 전화를 한 사실만으로도 압력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국민연금 이사장 제청권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결정짓는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와 관련해 복지부 장관이 전화한 것 자체가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압력 행사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 청와대와 문 전 장관은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었다. 합병비율 1 대 0.35로 결정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얻은 이득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결정한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의 판단 기준으로만 따져도 약 3700억원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국민연금은 약 58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문 전 장관이 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할 때도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그는 4개월 만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국민연금 노조는 “메르스 확산을 방치해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장본인인 문형표 전 장관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반대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들이 제출한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 개정안’도 1년째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문위원들은 삼성물산 합병 사례처럼 불투명한 의결권 결정 과정을 방지하기 위해 전문위원 3인 이상이 요청할 경우 해당 안건을 의무적으로 회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해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전문위원은 “내년 3~4월 대부분의 위원들이 임기가 끝나는데 그때까지 시간을 끌려고 한다는 의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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