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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 조선업, 일본에 17년 만에 추월당해

등록 2017-01-04 17:40수정 2017-01-04 22:19

한국 조선산업 수주잔량,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 뒤져
정부 조선·해운산업 정책 실패도 조선업 추락에 한몫
가파른 ‘수주절벽’ 앞에 몇년째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한국 조선업이 급기야 수주잔량에서 일본에 뒤처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9년 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선 지 17년 만에 ‘조선 한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 클라크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업체의 수주잔량(잠정치)은 1989만CGT(표준화물선으로 환산한 t수, 473척), 일본은 2006만4천CGT(835척)로 각각 집계됐다. 일본이 한국을 17만CGT가량 앞선 것이다. 수주잔량은 해당 시점에 조선소 도크(선박건조대)에 남아 있는 선박 건조 일감의 비축량을 뜻한다.

다만, 연간 수주량에서는 한국이 아직 일본을 앞서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조선업의 신규 수주량은 157만2천CGT로, 중국(351만3천CGT)엔 뒤졌지만 일본(111만5천CGT)에는 앞섰다.

우리나라는 1999년 말 수주잔량에서 일본을 2만CGT가량 앞서기 시작한 이후 줄곧 우위를 놓치지 않아왔다. 조선업이 큰호황을 구가하던 2008년 말에는 한국의 수주잔량이 일본의 두배에 달하기도 했다. 현재 국가별 수주잔량에서 중국이 1위이며, 한국과 일본이 2, 3위를 두고 경합하는 양상이다.

일본에 뒤처지게 된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전세계적인 극심한 수주 불황이 꼽힌다. 일본에 견줘 우리나라 조선업은 글로벌 업황 불황의 충격을 훨씬 더 크게 받는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일감 중 90% 안팎을 글로벌 선주로부터 받고 있다. 반면 일본은 자국 내 발주물량이 전체 선박의 50%에 이른다.

일본 조선소들은 지난해 1~11월 총 48척을 수주했는데 이 가운데 몰(MOL)을 비롯한 일본 내 거대 해운사가 발주한 물량이 최소 40척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본은 자국 해운사 발주가 많아 조선소들이 버티고 있는데, 우리는 해운업체마다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면서 지난 수년간 국내 해운사로부터 한 척도 신규 발주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조선업이 수주 가뭄에 빠져 있는 지금은 자국 내 발주물량이 그나마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 조선업체의 경우 건조를 다 마치고 선주에게 인도한 선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도 한·일 간 ‘재역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감을 새로 채우지는 못한 상황에서 지난해 도크를 빠져나간 선박은 한국이 1140만6천CGT인 반면, 일본은 670만4천CGT였다.

조선과 해운 두 산업이 서로를 함께 이끌어가는 ‘산업 생태계’가 파괴된 것도 이번 사태를 초래하는 데 한몫했다는 말도 나온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 수주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해외 해운사들에 수출금융을 지원해주기도 한 반면, 국내 해운사는 신용평가가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지원이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업정책 차원의 불균형 자원 배분으로 해운산업이 몰락 위기에 처하면서 조선도 함께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한진해운이 사실상 청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앞으로 국내 조선소들이 발주 가뭄에 더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 연구위원은 “해운업황이 회복되더라도 글로벌 해운사들이 필요한 선박을 옛 한진해운 선박 구입으로 충당할 공산이 크고, 그러면 해외 선사들의 신규 발주가 대폭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번 재역전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 홍 연구위원은 “일본 조선산업 자체가 규모나 기술능력에서 경쟁력을 회복해 한국을 다시 앞서게 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이번 역전이 ‘추세’로 지속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내다봤다.

지금 정부와 업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업 구조조정 돌입이 너무 늦어 그나마 발주 수요가 있는 있는 해외 선주들조차 건조 단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발주를 미루고 있는 형국”이라며 “조선 생산능력을 30%가량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진행하되, 정부는 글로벌 치킨게임에서 조선 빅3가 1~2년간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동성 확보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조선업의 판도(수주량 기준) 변화의 역사를 보면, 일본이 유럽을 제친 것이 1960년대 중반이다. 이후 1980년대 초 현대중공업이 개별 조선사로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1999년에는 우리 전체 조선업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도약한다. 국내 조선사들은 2005년부터 수년간은 사상 유례없는 대호황을 구가했으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해양플랜트 사업 실패 여파에서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 조선사들이 정부의 수요 창출과 정책금융 지원을 발판으로 도약하면서 한국은 2009년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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