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빈 가게에 임대 안내문이 붙여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7일 오후 5시께 서울 구로구 구로5동의 ㅅ슈퍼. 근처의 농협 하나로마트가 장보러온 이들로 붐비는 것과 달리 53㎡(16평) 규모의 이 점포는 단골인 듯 주인과 인사를 나누는 손님들이 간간이 들러 물건을 사갔다. 남편과 12년째 이 슈퍼를 운영하는 이정화씨는 “장사를 하는 동안 경기가 좋았던 적이 없었지만 지난해는 처음 적자가 났다”고 말했다. 5년 전 이씨 가게에서 30m쯤 떨어진 건물에 하나로마트가 들어선 뒤 매출이 줄기 시작해 지난해 4월부터는 임차료 내기도 버거워졌단다. 이씨는 “전 임차인에게 준 권리금 8천만원 중 일부라도 나중에 들어올 임차인에게 받으려면 웬만큼은 가게를 꾸려야 해 폐업도 못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불황이 이어지는데다 ‘생계형 창업’은 늘고, 청탁금지법 시행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매출 하락으로 임차료조차 벌지 못해 대출을 받아 연명하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께 찾은 서울 강남구 수서동 한 주상복합건물 1층의 ㅊ헤어숍도 예전 같으면 주말이라 붐빌 시간인데 커트를 하러 온 손님만 2명 있었다. 헤어숍 최정아 원장은 “20년 넘게 미용업을 하는 동안 지난해가 최악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씨는 “11월부터는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 1천만원을 대출받았는데도 직원 급여와 임차료로 쓰다 보니 12월에 대출금이 바닥났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에서 매출을 잘 올리던 헤어숍들도 하나같이 30~40% 매출이 떨어졌다고 울상”이라며 “최순실 사태로 돈을 쓰던 사람들도 지갑을 닫았다”고 전했다.
음식점들 가운데는 청탁금지법 영향까지 겹쳐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8일 오후 찾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해강’ 일식당 점포 자리에는 임차인을 구한다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마포구지회 서영철 회장은 “‘해강’은 주인만 한 번 바뀐 채 30여년 일식당을 해왔는데 매출이 급감해 지난해 11월 폐업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외식업중앙회 마포구지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마포지역의 음식점업 월평균 폐업 건수는 청탁금지법 시행 전 49건이었으나 법 시행 뒤 56건으로 늘었다.
중소형 부동산 중개법인 ‘리앤정파트너스’의 이진수 대표는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상가 2층 식당들이 폐업해도 새로 식당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사무실로 개조해 임대하는 건물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는 치킨집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최근엔 지난해 남미에서 발생한 홍수 탓에 콩기름 원료로 쓰이는 대두 가격이 급등하면서 업소용 식용유 값이 올라 더 ‘죽을 맛’이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ㄲ치킨점을 하는 민상헌씨는 “지난해 월평균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줄어들다 조류인플루엔자 영향으로 11월 중순부터는 70% 이상 급감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민씨는 “정부가 닭을 키우는 농민의 피해는 시가로 보상해주면서도 함께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게는 대출만 해줘 대출금으로 적자를 메우는 치킨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통계청과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자료에는 자영업자들의 암울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통계청이 2015년 기준으로 세무서에 등록된 자영업 업소 479만개를 매출액으로 구분한 결과, 1200만~4600만원 미만이 30.6%(146만4천개)로 가장 많았다. 1200만원 미만도 21.2%(101만8천개)다. 세무자료상으로는 연매출 4600만원도 올리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절반(51.8%)이 넘는다.
경기는 회복되지 못하는데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이들은 계속 증가해 사정은 악화 일로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국세청이 내놓은 ‘2016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하루 평균 3천명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2천명이 사업을 접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해 10월6일~11월25일 전국 소상공인 3천명을 대상으로 ‘경영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자영업에서 비중이 가장 큰 도매 및 소매업자(표본수 809명)의 60.2%가 월평균 매출이 전년보다 줄었다고 답했다. 숙박 및 음식점업(572명)은 48.8%, 수리·기타 개인서비스업은(345명) 54.9%, 교육서비스업(124명)은 48.5%,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86명)은 61.0%가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했다고 밝혔다.
윤영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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