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퀄컴소송 앞두고 한-미 통상마찰 자초 위험
삼성, 2016년 공정위 상대 소송 10건…이해상충 우려
공정위 재고 요청…인사혁신처 ‘공정 선발’ 해명
채이배 의원 “국익 배치…즉각 철회” 요구
삼성, 2016년 공정위 상대 소송 10건…이해상충 우려
공정위 재고 요청…인사혁신처 ‘공정 선발’ 해명
채이배 의원 “국익 배치…즉각 철회” 요구
미국의 ‘특허 공룡’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원대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 제기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인사혁신처가 퀄컴 상대 소송을 맡을 공정위 송무담당관(과장)에 삼성 사내변호사를 1순위로 추천해 한-미 간 통상 마찰을 자초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일 공정위·인사혁신처·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말 공정위 송무담당관 자리에 이아무개 삼성에스디아이(SDI) 사내변호사를 1순위로,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공정위 직원을 2순위 후보로 통보했다. 공무원과 민간인이 모두 지원할 수 있는 ‘개방직’인 송무담당관은 기업들과의 소송 업무를 맡는다. ‘개방직 운영 규정’에 따라 공정위는 1순위 후보를 임명하는 게 원칙이고, 추천 순위를 바꾸려면 인사혁신처와 협의하도록 돼 있어 이 변호사의 임명이 유력하다.
하지만 공정위는 삼성 출신 변호사를 송무담당관에 임명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인사혁신처에 1순위자 대신 2순위자 임명을 요청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한-미 간 통상 마찰 우려를 꼽는다. 공정위는 지난달 28일 퀄컴에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을 이유로 역대 최대인 1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퀄컴은 특허료를 내는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발하며 소송 제기 방침을 밝혀,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한 뒤 한-미 간 통상 마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이 때문에 추가자료를 통해 “퀄컴에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등 절차적 공정성에 최대한 노력했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공정위 관계자는 “퀄컴 소송을 맡을 송무담당관에 삼성 출신 변호사를 앉히는 것은 미국 정부와 퀄컴에 공정위와 삼성이 유착됐다고 주장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위 쪽에서는 이아무개 변호사가 삼성에스디아이에서 해외 거래계약 관련 법률 문제 검토를 주로 맡아 공정거래 분야 전문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한다.
또 삼성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공정거래 관련 법 상습 위반 기업으로, 공정위 제재에 대해 거의 예외 없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 출신 변호사가 송무담당관을 맡을 경우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공정위로부터 받은 ‘30대 그룹 누적 과징금 금액 및 법위반 횟수’ 자료를 보면, 삼성은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모두 41건이 공정위에 적발되고 2832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돼 현대차그룹에 이어 2위(과징금 기준)를 기록했다. 한 공정위 간부는 “지난해의 경우 삼성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10건이나 진행됐고 해당 과징금이 565억원에 달한다”면서 “공정위의 소송 전략 등이 삼성쪽으로 흘러나갈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인사혁신처는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이 문제를 질의하자 “개방직 관련 규정에 따라 민간위원만으로 구성된 독립된 중앙선발시험위원회에서 서류·면접 전형을 거쳐 임용 후보자를 공정하게 선발했다”며 원칙적 입장만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공정위의 추천 순위 교체 요구에 대해 ‘외부 인사 수혈’이라는 개방직의 취지를 앞세워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이배 의원은 “공정위 송무담당관에 삼성 출신 변호사를 임명하려는 것은 황교안 대행 체제에서도 ‘박근혜표 인사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인사혁신처는 즉각 후보 추천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이번 건은 순수한 개인적인 일로, 회사와는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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