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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생협 매장은 어떻게 ‘계란 파동’을 피했나

등록 2017-01-19 10:32수정 2017-01-20 15:22

【더 나은 사회】
AI 대란 뒤 공급 달려 값 급등했지만
생협에서는 종전과 거의 변화 없어

소비자-생산자 함께 정하는 ‘적정가격’
갑작스런 상승 요인을 흡수하는 ‘안정기금’
신뢰와 상생의 ‘가치 구매’ 등 안전판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의 신선식품 코너에서 한 고객이 포장채소류를 살펴보고 있다. 아이쿱생협 제공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의 신선식품 코너에서 한 고객이 포장채소류를 살펴보고 있다. 아이쿱생협 제공
설 연휴를 앞두고 차례상 준비 등에 들어갈 비용 부담 때문에 서민 가계의 시름이 깊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이다. 이 정도면 물가 안정세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민들의 물가상승 체감도는 이보다 훨씬 높다. 식품류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품목들의 물가는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해 무섭게 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통계청의 물가지수에서 신선식품류만 따로 살펴보면 12%나 올라 상승률이 전체 평균의 9배에 이른다. 정부는 “농축산물 등 주요 성수품 공급을 평상시 대비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며 명절 때마다 되풀이하는 약속을 내놓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특히 이번 설에는 기상악화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 특이요인에 따른 농축수산품의 가격상승 압력이 크다.

이런 가운데 외부요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제품에 주목하게 된다. 두레생협, 아이쿱생협, 한살림, 행복중심 등 생협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서로 직거래하려고 만든 조직이다. 생산자는 안정적 판로를 확보해 농사를 짓는 데 전념하고, 소비자는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늘 적정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다만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하면 막연히 비싸다는 편견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같이 갑작스런 수급 차질로 가격이 요동을 칠 때면 생협 제품은 고마운 존재로 떠오른다. 비슷한 품질의 같은 상품을 대형마트의 판매가격에 견줘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이 많다.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달걀값이 치솟는 와중에도 생협 매장의 가격표는 거의 바뀌지 않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생협 조합원들은 매장에서도 구매할 수도 있고 전화나 홈페이지, 모바일 앱으로도 주문을 할 수 있다.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이점과 함께 구매절차의 편의성도 누리는 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생협이 이처럼 품질과 가격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방식에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필요를 최우선으로 하기에, 유통단계는 최대한 줄이고 유통비용은 최소화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가격 구조를 만들어낸다. 소비자 조합원이라는 든든한 구매층을 바탕으로 일반 기업보다 광고홍보비 등 마케팅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요컨대 거품을 뺀 적정가격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생협이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합리적인 가격을 결정해 나간다는 점이다. 한살림은 1989년부터 해마다 연말에 농민생산자와 소비자 대표들이 함께 모여 다음해 쌀 생산량과 가격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열어 오고 있다. 일반기업에서 임금협상을 할 때 노사 대표가 맞서는 것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진영 간 치열한 대립이 있을 것 같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생산단가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적정 수준으로 쉽게 합의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대표들이 생산 농민들이 어려우니 쌀값을 올리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반대로 생산자 대표들이 시중 쌀값의 하락 추세를 반영해 동결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생산량과 가격이 미리 결정되기에 농민들은 안심하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다. 한살림 관계자는 “생산자는 소비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상호신뢰 속의 책임생산과 책임소비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생협 가격의 변동성이 적은 또다른 비결은 회원들 스스로 마련한 완충장치이다. 농축수산물은 생산·출하 여건을 예측하기 어렵고, 그만큼 일반상품과는 달리 때와 장소에 따른 가격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협에서는 돌발 상황에 따른 가격등락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급격한 가격조정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기금을 확보하여 운영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2009년부터 생산자의 출하금과 소비자 조합원의 회비에서 일정 금액씩 떼어 안정기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 기금은 특정 제품의 시장가격이 다양한 요인으로 출렁일 때 생산자든 소비자든 어느 한쪽에 경제적 부담이나 손실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2010년 김장철에 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원 선을 웃돌며 파동이 벌어질 때 생산자와 약 2500원으로 계약생산한 30만포기의 김장배추를 조합원에게 1600원대에 공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아이쿱생협이 지난 3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집행한 가격안정기금은 62억6천만원이다.

가격 못지않게 가치를 중시하는 생협 회원들의 소비패턴도 가격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생협 제품은 몸에 좋고 식탁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매력이 크다. 생협들은 이런 매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 투자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캐러멜색소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자 지난해 11월 대체재를 개발했다. 또한 수입밀에 의존해오던 글루텐, 소맥 전분의 원재료를 우리밀로 바꿔 환경과 소비자 건강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4대 생협은 식량 주권을 지키고, 지구 환경을 고려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도 펼치고 있다. 지난 한해 유전자변형식품(GMO) 표시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쳐낸 곳도 생협이다. 생협에서는 새로운 물품을 취급할 때 소비자 조합원이 직접 심의하고 결정한다. 소비자 조합원들로 구성된 ‘물품심의 및 취급위원회’가 새 제품을 맛보거나 사용해보고, 원부재료 사양서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소비자 조합원들에게 생산자 정보를 공유하며 직접 현지 견학도 할 수 있는 등 생산의 전 과정을 알려주는 게 원칙이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조합원 스스로 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엄격한 품질관리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일반 시장에서 통용되는 기준보다 건강, 환경, 윤리적 가치 등을 더 높게 설정한다. 한살림의 자주인증제, 행복중심의 생활재 자체인증기준 등이 그런 예이다. 아이쿱생협의 아이쿱인증시스템은 안전성, 순환성, 생물다양성(동물복지), 신뢰성, 지속가능성의 5가지 기준에 따라 물품을 평가한다. 국가 공인 친환경인증마크가 있더라도 생산-출하-유통 단계마다 정기 또는 불시 검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생협의 이런 검증시스템은 도시 소비자와 생산지 농민의 상생을 도모하고 윤리적 소비를 진작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한 ‘생활협동조합을 통한 윤리적 소비 확산 방안 연구’(2013년)를 보면, 국내 윤리적 소비의 선도적 주체가 바로 생협이다. 생협의 성장과 함께 친환경 농산물시장의 규모 역시 성장했으며, 친환경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폭넓게 수용되어 정부 정책으로도 자리 잡게 되었다. 소비자원의 연구보고서는 생협의 독자적인 생산·유통망과 이를 토대로 한 시장 창출력,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구매력이 친환경제품 확산의 원동력이라고 진단했다.

소비는 경제적 투표행위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소비는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생협 매장의 제품들은 새로운 가치까지 담고 있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social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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