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도입된 증권집단소송제가 12년간 소송건수가 한 자릿수에 그치고,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을 얻는 데만 평균 4년 이상이 걸리는 등 ‘유명무실’한 것으로 조사돼,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2일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실의 ‘증권집단소송 현황’ 자료를 보면, 이 제도가 2005년 1월 시행 이후 12년 동안 제기된 소송은 고작 9건에 그친다. 2005~2008년에는 단 한 건도 없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은 매년 1건씩, 2013년과 2014년은 2건씩이었다. 2015년은 소송 제기가 없었고, 2016년은 1건에 그쳤다. 또 9건 중에서 1단계인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겨우 5건에 불과하다. 화해로 종결된 진성티이씨 분식회계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4건의 소송허가 결정에 걸린 시간은 평균 51.5개월에 달한다. 동양그룹이 고의로 부실을 숨기고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발행해 수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도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3건의 증권집단소송이 제기됐지만 3년이 지나가도록 소송허가 결정조차 안 나고 있다. 2단계인 본안소송에서 최소 1심 판결이라도 난 것은 도이치은행의 시세조종사건이 유일하다. 서울중앙지법은 20일 도이치은행에 대해 원고 대표인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6명에게 85억8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증권집단소송제는 분식회계·부실감사·주가조작·내부거래 등의 불법행위로 인한 다수 투자자들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투자자 중 일부가 승소하면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투자자들도 동일한 효력을 적용받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처음 1심 판결이 나는 데 무려 12년이 걸릴 정도로 소송이 장기화하고, 소송 제기 건수가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소송 요건과 법원의 소극적 태도 등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전문가들은 미국의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처럼 불법행위를 보다 쉽게 입증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이치은행 시세조종 사건의 원고 쪽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 대표변호사는 “미국은 원고가 증거개시제도를 통해 피고 쪽에 사건 관련 자료를 일괄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일본도 이와 비슷한 문서제출명령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을 보다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경제개혁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상황에서, 이미 시행 중인 증권집단소송제부터 개선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채이배 의원은 지난해 8월 증권집단소송제가 1단계 소송허가결정 청구소송과 2단계 본안소송으로 이원화돼 사실상 6심제로 운영되고 장기화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송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채 의원은 “최근 사회적으로 대우조선해양·모뉴엘·에스티엑스의 분식회계 사건과 한미약품 늑장 공시 및 미공개정보 유출 사건으로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증권집단소송제를 통한 투자자들의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소비자와 관련된 다른 영역으로 집단소송제를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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