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 전문그룹인 성우하이텍그룹에 속한 아이존은 총수인 이명근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실상의 개인회사다. 아이존은 2015년 매출액 1999억원을 모두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올렸다. 총수 일가는 아이존을 통해 영업이익 198억원과 순이익 243억원이라는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성우하이텍그룹의 총자산은 3조4천억원(국내 기준)으로 공정거래법의 총수 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인 5조원에 미달해 공정위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는 1일 자산이 5조원에 미달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는 중견 그룹인 동원, 농심, 성우하이텍, 한미사이언스, 넥센, 풍산, 에스피시(SPC), 대상, 오뚜기, 한일시멘트 등 10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대규모 기업집단 이외 집단에서의 일감몰아주기 등 사례’ 보고서(작성자 이은정)에서 일감몰아주기 또는 회사기회 유용 의심 사례가 29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 상위 재벌만 규제하지만, 그보다 작은 중견 재벌에서도 일감몰아주기 폐해가 적지 않음이 확인된 셈이다.
보고서는 성우하이텍그룹의 경우 아이존을 포함해 에이앤엠, 성우하이텍선장, 엠지엘(MGL) 등 4개 계열사에서 총수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또는 회사기회 유용 의심 사례가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동원그룹은 동원엔터프라이즈, 동원시스템즈, 동원시엔에스, 동원냉장 등 4개사에서 일감몰아주기 의심 사례가 드러났다. 농심그룹은 율촌화학, 엔티에스, 호텔농심, 농심미분, 태경농산, 농심엔지니어링 등 6개사에서 일감몰아주기와 회사기회 유용 의심 사례가 파악됐다. 한미약품 주가조작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한미사이언스그룹은 한미아이티, 한미메디케어, 온라인팜 등 3개사에서 이런 사례가 밝혀졌다. 넥센그룹의 넥센엘엔시, 풍산그룹의 풍산홀딩스, 대상그룹의 아그로닉스도 비슷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제빵업체인 에스피시그룹에 속한 샤니는 허영인 회장 일가가 사실상 지분 100%를 갖고 있는 개인회사로, 2015년 매출액 2103억원 가운데 99.7%가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발생했다. 에스피시그룹은 샤니와 함께 호남샤니, 설목장 등 3개사가 일감몰아주기 의심을 받는다. 오뚜기그룹은 오뚜기물류서비스, 오뚜기에스에프, 알디에스, 상미식품 등 4개사, 한일시멘트그룹은 세원개발, 중원전기 등 2개사가 이런 사례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 재벌그룹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 지분이 20%(상장사는 30%) 이상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부당하게 사업 기회를 넘겨주는 행위(회사기회 유용)를 하면 제재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자산 5조원 이하 중하위그룹들도 일감몰아주기 폐해가 심한 만큼 규제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며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이사회의 승인을 얻게 돼 있는 상법 규정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상법을 개정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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