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8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소비와 고용 부진 우려가 심각하지만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대내외 불확실성을 염려해야 하는 사정이 작용했다. 고민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마찬가지다. 경제 여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트럼프 정부의 불확실성이 큰 탓에 섣불리 금리를 인상할 수 없는 처지다.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1.25%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성명에서 한은은 최근 국내 소비와 고용에 대해 “부진하다”고 평가했다. 고용에 대해서는 제조업 취업자수 감소폭 확대와 서비스업 취업자수 증가세 둔화를 지적했다. 소비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심리 위축 지속으로 1월 경제전망과 비교해 전망 수준을 다소 하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수출과 설비투자는 1월 전망보다 개선될 것으로 봐, 전체 경제성장은 1월 전망(올해 경제성장률 2.5%)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와 고용 부진이 깊어지고 있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처음으로 1300조원을 넘어서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계부채에 대해 “우량한 차주 중심으로 부채가 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의 경우 2개월 연속 증가 규모가 축소됐지만 계절적 요인에도 기인하는 만큼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가계부채 폭증을 주택담보대출과 분양 중도금 등 집단대출이 견인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겨울철이 부동산 비수기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도 변수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가까운 시일에 금리인상을 예고해 금리 인하가 부담스럽다.
당장 움직이기가 어려운 것은 미 연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각) 공개된 연준의 지난 1일 연방공개시장회의(FOMC) 의사록을 보면 위원 다수가 “고용과 물가 지표가 현재 예상 수준과 일치하거나 그보다 양호할 경우, 아주 가까운 시일에 금리를 올리는 게 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위원들은 동시에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불러올 변화에 대해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시장은 이번 연준 의사록을 “매파적(긴축 선호)”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22일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오히려 0.02%포인트 하락한 2.41%로 거래를 마쳤다. 블룸버그가 추산한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3월 미국 금리인상 확률도 22일 전날보다 2%포인트 하락한 34%에 머물렀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이어지는 연준 위원들의 매파적 발언은 연내 세차례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3월 인상보다는, 6월 인상에서 소폭 앞당겨진 5월 인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아직은 재닛 옐런 연준 의장보다는 트럼프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선물시장에 반영된 3월 미국 금리인상 확률은 이달 초 32%에서 최근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5월 인상 확률은 이달 초 48.8%에서 22일 61%까지 높아졌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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