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에 해당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의 일부를 은행에 신탁한 것과 관련해 주식의 실질 소유권에는 변동이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도, 질의를 낸 공정거래위원회에 한달이 넘게 회신을 않고 있다.
31일 금감원과 공정위에 따르면, 금감원 회계제도실은 에버랜드가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 19.34% 가운데 6%를 5년간 신탁하는 계약을 제일은행과 맺은 것이 회계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공정위가 질의를 한 것과 관련해, 기업회계기준 상 달라질 게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는 현행 기업회계기준 3조(일반원칙) 7호의 ‘회계처리는 거래의 실질과 경제적 사실을 반영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생명 주식 신탁이 회계처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경우 에버랜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지분법 적용 투자주식의 평가액이 총자산의 50%를 넘게 돼, 올 4월부터 금융지주회사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자회사인 생명이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의 주식을 가질 수 없게 돼, 에버랜드→생명→전자→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삼성의 소유지배구조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관련기사 : 에버랜드, 금융지주사 피하려 삼성생명 주식 6% 신탁)
그러나 금감원 고위층은 이에 대해 “사안의 파장이 크기 때문에 실무부서의 판단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고, 회계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한다”며 공정위에 대한 회신을 늦추도록 했다. 금감원 규정상 민원 질의는 늦어도 14일 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데, 공정위 회신은 한달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감원 안에선 이런 조처에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문가 의견은 담당부서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 있을 때 듣는 것인데, 이번 사안은 누가 봐도 명확한 것”이라며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 관계자는 “주식신탁은 당연히 소유권 변동으로 봐야 한다”며 “금감위와도 사전 의견교환을 거쳤다”고 말해 궁금증을 키웠다.
공정위도 금감원에 조속한 회신을 독촉하며, 강한 불만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 간부는 “금감원 담당부서에서 ‘주식신탁으로 회계처리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해석을 내렸으나 윗선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공정위가 자체적으로 회계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도 똑같은데, 무슨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증권집단소송제 등 다른 현안 때문에 처리가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박효상 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박효상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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