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크라우드펀딩 대회에서 투자자를 모으는 데 성공한 예비 사회적 기업 녹색친구들이 지난해 11월8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투자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와 토론을 하는 소셜 다이닝 행사를 열고 있다. 오마이컴퍼니 제공
“작은 힘이지만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중소 출판사의 책을 중소서점에 유통해오던 송인서적 부도사태로 위기에 빠진 작은 출판사들을 위해 새로운 유통 구조 마련에 나선 땡땡책협동조합이 추진한 네이버의 공감펀딩에 ‘지혜커플’이라는 아이디의 후원자가 남긴 댓글이다. 지난 1월26일 시작된 이 펀딩에 664명의 작은 힘이 모여 2801만원을 모았다.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들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에 출판 유통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 12편의 글을 연재하며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에는 현재까지 224건에 1166만원 후원금이 모였다. 땡땡책협동조합은 이렇게 모은 후원금으로 송인서적 부도사태로 피해를 입은 19개 출판사의 책을 구입하여 펀딩한 분들과 나누는 데 쓸 예정이다.
예전엔 후원금을 모으려면 거리를 돌아다니고 여러 기관을 방문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간편하게 기부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온라인이 뜻이 맞고 마음이 맞는 시민들의 힘이 모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지난 14일 촛불집회 주최 쪽이 최근 연이은 집회로 1억원의 빚을 졌다는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단 3일 만에 시민들의 소액후원으로 입금된 돈은 8억8천여만원.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까지 모두 2만1천여명의 시민이 십시일반 후원에 나섰다. 에스엔에스에는 릴레이 인증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작은 힘이나마 동참한다”, “적은 돈이지만 보태겠다” 등의 댓글을 달며 기쁜 마음으로 십시일반 후원에 동참했다.
후원을 유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글과 사진, 영상을 통해 후원의 의미를 알리는가 하면 후원자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한다. 1981년 홍콩에서 시작된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4명이 한 팀이 되어 38시간 이내에 100㎞를 걸어야 하는 세계적인 ‘도전형 기부 프로젝트’이다. 한국에서는 오는 5월20~21일 최초로 이 행사가 열린다. 도전과 기부를 연결하는 것 외에 최근 추가된 또 한 가지 이 프로젝트의 특색은 십시일반 후원 방식이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참여하는 팀별로 자신의 스토리를 누리집(
www.oxfamtrailwalker.or.kr)에 올려 지인들이 도전 자체를 응원하며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팀별 모금 금액과 순위가 실시간 업데이트되기에 도전을 완수하는 것 못지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 모금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며 좋은 일을 남몰래 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 에스엔에스 시대에는 후원 자체도 인증하고 널리 알리는 게 미덕으로 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적은 금액이라도 함께 힘을 보태며 보람과 함께 즐거움을 느낀다. 큰손만이 아닌 개미후원자들이 모여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의 십시일반 후원이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이다. 크라우드펀딩은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와 재정 지원을 의미하는 펀딩이 합쳐진 말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이다. 기존의 자금을 모으는 방식과 다른 점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기반이 돼서 여러 개인들로부터 소규모 기부, 후원, 투자 약정을 얻어낸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가 자원 조달의 양방향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면서 생긴 변화이다. 이렇게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격려, 재능기부, 금품 후원, 투자 등이 모인다.
크라우드펀딩은 기업의 생태계도 바꿔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는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자본이 부족하여 상업화를 하지 못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착용형(웨어러블) 스마트 시계를 제조하는 미국 스타트업 페블(pebble)은 2012년 아이디어만으로 이 사이트를 통해 37일 만에 7만여명으로부터 104억원을 유치했다. 세계적으로 2005년부터 시작된 크라우드펀딩은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매솔루션의 보고서를 보면, 세계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340억달러(약 39조원)에 이른다. 3년 전(27억달러)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앞서 예를 든 창작활동, 문화예술상품, 사회공익활동 등을 지원하는 후원형만이 아닌 피투피(P2P)라 불리는 대출형, 출자 및 지분취득을 통한 지분투자형까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새로운 방식의 자금 모금 방식과 다양하게 접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생 기업들을 위한 투자처이자 사회적 경제기업들을 위한 투자 모금 방식으로 활용된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부터 매년 사회적 기업 크라우드펀딩 대회를 열어왔다. 작년부터는 사회적 기업만이 아니라 소셜벤처,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온라인 크라우드펀딩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시민 투자 오디션 등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인 녹색친구들은 작년 이 대회를 통해 5천만원을 모았다. 대회 직전에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모았던 5천만원까지 합하면 1억원의 투자금을 마련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확산하는 사회주택은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서울시와 함께 민관이 공동 출자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개념도 낯선 사회주택이기에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크라우드펀딩 대회는 시민들에게 사회주택의 가치를 알리고 본 사업의 안정성을 설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이 됐다. 이렇게 모아진 투자금 1억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 대출을 받아 10억원의 자금으로 사회주택 1, 2호가 착공되었다. 1차 크라우드펀딩 5천만원은 원리금 일시상환, 투자수익률 10%(년)의 채권으로 발행되었으며 작년 10월 만기일에 차질 없이 상환을 완료했다. 투자자들이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후 진행 상황도 안내하고 있다. 사회주택 1호는 완공되어 입주가 시작되었으며 2호 주택도 4월 말 준공 예정이다. 녹색친구들 김종식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우리 사업의 사회적 가치와 신뢰성을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시민들의 투자금이 마중물이 되어 안정적으로 사업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시민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작년 1월에는 ‘크라우드펀딩법’이라고도 불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이 본격 시행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이 본격화되었다. 이 법은 지분투자형만 허용할 뿐 후원형과 대출형은 제외돼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업 중개업자 8곳과 겸업 중개업자 6곳이 참여했으며, 펀딩 시도 255건 중 115건이 성공해 174억원이 조달되었다.
지분투자형의 경우에도 시행 1년 만에 여러 문제점이 불거졌다. 장정은 변호사는 “20인 미만 음식점업이나 기타 개인서비스업을 수행하는 기업의 경우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할 수 없는 등 업종 제한이 광범위하다. 일반투자자의 1인당 투자한도가 한 회사당 200만원으로 제한되는 등 과도한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득수준별 투자한도 제한은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이었는데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자칫 무분별한 광고로 인한 묻지마 투자와 고위험군 시장을 형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반영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애초 예상했던 388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쳐 성장하는 크라우드펀딩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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