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사익편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발 벗고 나섰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산 5조원 이상 총수 있는 45개 기업집단(재벌)의 225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총수 일가 사익편취 실태조사에 착수했다”며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근절은 향후 경제 상황이나 정치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금지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이상,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재벌 계열사다. 실태조사는 2015년 2월에 이어 두 번째로, 공정위가 사익편취 근절을 올해 중점 업무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는 막강한 지배권을 쥔 총수 일가가 계열사 간 부당지원, 사업기회 제공, 일감 몰아주기 등의 수법으로 회사의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중소기업의 사업기회를 막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3년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신 부위원장은 “2014년 2월 법 시행 이후 3년이 지나 사익편취 금지 제도의 정착과 실효성 여부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규제 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실태 전반을 점검하고 사업기회 제공, 통행세 수취(부당한 계열사 끼워넣기) 등 신종 수법도 꼼꼼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를 위해 계열사간 내부거래 내역을 상품·용역·자금·자산 등으로 세분화해 파악하고, 위법 혐의가 포착되면 직권조사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현대, 씨제이(CJ), 한진 등 3개 그룹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를 제재했고, 현재 한화와 하이트진로를 조사중인데, 법 시행 이후 3년간 실적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신 부위원장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상장사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인 것을 비상장사와 똑같이 20% 이상으로 강화하기 위해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을 포함한 야당 의원들은 지난해 이런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긍정적 입장을 보임에 따라 법 개정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법이 개정되면 현대글로비스나 이노션처럼 총수 일가 지분이 20~30% 미만인 상장사들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현대차그룹은 법 시행 직전에 총수 일가가 가진 글로비스와 이노션 지분을 29.99%로 낮춰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공정위는 또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가 갈수록 은밀해지고 있어 적발이 어렵다고 보고 최대 10억원까지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해 사회적 감시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편 신 부위원장은 공정위가 2015년 청와대 압력과 삼성 로비를 받고 삼성의 신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처분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을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축소한 혐의가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것과 관련해 “당시 위원장 결제까지 끝난 1000만주 매각 방안을 윗선(김학현 전 부위원장)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을 때 사무처장·국장·과장 등 실무진은 모두 반대했는데, 마치 공정위 전체가 외부 압력에 굴복한 것처럼 잘못 알려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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