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이 갑을문제 시정과 경제적 약자 보호는 소관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공정위 내부시각을 비판했다. 또 공정시장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법위반 기업에 대한 제재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 대선후보들이 갑을문제 개선,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을 최우선 경제개혁 과제로 강조하고 있지만, 공정위 일각에선 아직 소극적 태도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공정위 역할 재정립과 향후 과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일 복수의 공정위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신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창립 36주년 기념식에서 “공정위의 기본역할은 시장경쟁 촉진이지만 갑을문제의 시정과 경제적 약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적지 않다”면서 “공정위 일각에서는 경쟁촉진과 경쟁제한행위 시정에만 주력하고 갑을문제는 민사소송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강자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강자들의 부당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기 어려워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공정위가 ‘시장경제 파수꾼’으로서 공정경쟁의 규칙을 정립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부위원장은 공정위 과제로 성장과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공정시장 구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경제적 약자도 시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창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재벌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관련 불공정행위에 대한 집행력 강화를 강조했다. 또 소액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집단소송제와, 행정제재만으로는 법위반행위를 억제하기 힘든 분야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도 주장했다.
신 부위원장은 또 “법위반행위를 줄이려면 위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예상되는 패널티를 더 크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과징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다 적고, 반복적 법위반자에 대한 가중처벌도 미흡하다”면서 솜방망이 제재 관행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피해 당사자가 직접 법원에 공정거래 관련법 위반행위의 금지를 청구하는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방안도 제안했다.
공정위 한 간부는 “신 부위원장이 직원들만 참석하는 내부행사라는 점 때문에 평소 소신을 솔직하게 밝힌 것 같다”면서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신 부위원장은 공정위 시장감시·경쟁정책국장을 거쳐 사무처장을 지낸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로, 지난 1월 임기3년의 부위원장(차관)으로 승진했다. 신 부위원장은 사무처장 재직 때인 2014년 씨제이이앤엠을 불공정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라는 청와대의 압력을 거부해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논쟁을 벌였고, 2015년 청와대가 삼성의 신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처분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을 줄이라고 압력을 넣었을 때도 실무진과 함께 반대한 사실이 특검 수사과정에서 알려지기도 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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