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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짬짜미에 너그러운 한국 사법부

등록 2017-04-05 17:15수정 2017-04-06 09:54

유럽선 3조원대 과징금 먹은
‘트럭제조업체 짬짜미’ 소송
한국선 “단정 어렵다” 잇단 무죄
‘라면 사건’도 한-미 달리 취급

짬짜미 갈수록 교묘해지는 상황
전문가들 “사실상 면죄부 결과”
사법부가 선진국에서는 짬짜미로 제재를 받거나 소비자에게 배상한 기업들에 잇달아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시장경제의 암’으로 불리는 짬짜미에 면죄부는 물론 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 등에 따르면, 대법원과 고등법원은 트럭제조사 짬짜미 혐의에 대해 연이어 무죄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외국 트럭제조사인 볼보·스카니아·다임러·만트럭의 짬짜미 사건에 대해 공정위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기업들이 가격정보를 교환한 것은 인정되지만 가격담합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업체의 가격인상폭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서울고등법원도 3월10일 타타대우의 짬짜미 사건에 대해 같은 이유로 공정위에 패소 판결했다. 앞서 공정위는 2013년 볼보·스카니아·다임러·만트럭·타타대우·현대차·대우송도개발 등 7개 트럭제조사들이 가격인상 계획, 판매가격 등의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근거로 가격을 정한 것을 적발하고 짬짜미 혐의로 116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트럭제조사의 가격 짬짜미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7월 3조6천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과 동일한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제재를 받은 5개 트럭제조사 중에는 공정위 제재를 받은 볼보·다임러·만트럭·스카니아 등이 포함돼 있다. 담합 기간도 1997~2011년으로, 공정위가 적발한 2002~2011년과 겹친다. 더욱이 트럭제조사들은 유럽연합에서는 혐의를 인정하는 리니언시(자진신고) 등으로 과징금을 감경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혐의를 부정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공정위는 이날 “사법부 판결은 선진국의 법 집행과 맞지 않고, 짬짜미 행위가 갈수록 교묘해지는 상황에서 사실상 기업들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기업 간 가격 정보교환 행위를 짬짜미로 판단해 제재한다. 2008년에도 3개 바나나 수입판매업체가 매주 목요일 다음주의 기준가격을 공지하기에 앞서 전화통화로 가격정보를 교환하고 인상에 대한 의견을 나눈 행위에 벌을 내린 바 있다. 기업들은 단순히 정보교환만 했을 뿐 가격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며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유럽사법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조성국 중앙대 교수(법학)는 “유럽연합은 정보교환만으로도 담합을 인정하는 등 적극적이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신중하지만 정보교환을 담합의 중요한 정황증거로 고려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일본도 가격 결정과 관련해 명시적 합의의 증거가 없어도 정보교환 등 간접적 증거가 있으면 묵시적 합의로 보고 제재한다”고 밝혔다.

라면업체 짬짜미 사건도 선진국과 다른 판결이 나온 경우다. 공정위는 2012년 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이 2001년부터 약 10년간 수시로 가격인상 정보를 교환하고, 1위 업체인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따라서 인상한 것을 적발해 1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기업들은 항소했지만, 서울고법은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6년 1월 “가격에 관한 정보교환만으로는 담합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업체별 가격 평균 인상률도 꼭 같지 않다”며 라면업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국내 라면업체 짬짜미로 큰 피해를 보았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삼양은 재판 도중 소비자와 배상안에 합의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끝내 사실상 혐의를 인정했다. 농심과 오뚜기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정위와 전문가들은 법원의 소극적인 법률 해석이 짬짜미 적발을 위축시킬 위험성을 제기한다. 공정위 간부는 “짬짜미를 어렵게 밝혀 제재해도 사법부가 무죄판결을 내리면 소용이 없고, 언론에서는 공정위가 무리하게 법 집행을 했다고 공격한다”며 “공정위가 짬짜미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조사·제재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승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짬짜미는 비밀리에 진행돼 직접적인 합의 증거를 발견하기가 어려워 미공개 정보를 교환하고 가격인상에 반영한 사실이 드러나면 강력한 정황증거로 활용해야 한다”며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짬짜미를 부추겨 소비자 피해를 방조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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