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경제민주주의를 말하다’ 강연에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재벌개혁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재벌총수 청문회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한겨레>에서 오랜 기간 경제 기사를 써온 김경락 기자가 만났습니다.
참여연대가 연 ‘경제민주주의를 말하다’ 강연이었는데요. 첫번째 주제가 “재벌개혁하면, 내 생활은 무엇이 달라지나요?” 였습니다. 두 시간에 걸친 첫번째 강의에서 귀에 담을만한 이야기를 <위코노미>가 축약해 정리했습니다.
- 김경락 : 언론은 보통 재벌 문제라고 말하는데, 재벌은 무엇이 문제라고 봐야할까?
= 주진형 : 재벌개혁이 나온지가 30년, 40년 되었는데 안 되었죠. 왜 안될까. 이 문제를 한국에 와서 보는데 제가 볼때, 소액주주 운동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뾰족한 다른 수가 있는건 아니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 한국 사회가 서구에서 가져온 민법과 회사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비근한 예로 치킨 값을 올리자고 하는데 정부가 올리지 말라고 세무조사 한다고 으름장 놓는 것을 적어도 2017년 한국에서 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정부가 으름장을 놓은 게 이슈가 아니라 진보·보수 양쪽 다 잘했다고 하는 것이 놀라웠다.
치열한 시장 경쟁을 하는 사업에서 값을 올리겠다는데 정부가 협박하고 언론은 칭찬하고 국민은 잘되었다고 받아들인다. 한국은 기업에 대해 경제정의 활동을 한다면서 정부가 간섭하는 것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그 뒤에 있는 형법이나 이사회는 껍데기다. 밖에서 가져온 것은 겉으로 돌고, 안에는 또다른 로직이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벌 문제다. 기업이 상장을 했다. 한국은 일반적인 주식회사라고 생각을 안 한다. 이사회도 말이 이사회지, 실제로 회사법에 상정된 식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다.
우리 국민이 원하지 않아서 재벌개혁이 안 되는게 아니다. 왜 재벌개혁이 안 되느냐. 기본적으로 삼권 분립이 안 되어있고, 사유재산제도가 확립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뒤에 숨겨져 있는 이슈다. 정치인들이 위에서 이렇고 저렇고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재벌 관련해서 세습을 어떻게 하냐면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회사의 돈을 빼돌려 재원을 만들고, 상속세를 내고, 나머지를 남기도록 준비를 해놓는다. 예를 들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한테 60억을 받아서 15억을 상속세 내고 이걸로 8조를 만들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세금을 적게 낸 것에 대해 열받는 사람이 많은데 8조원 그 돈은 이건희 회장이 준게 아니다. 7조9940억원의 주주의 돈을 누군가 빼돌린 것이다. 사유재산에 대한 이슈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관행이라도 있으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재벌 오너라는 표현은 그 어느 나라를 가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제가 유학가기 전에는 안썼던 용어다. 민법으로 이 사람들을 설명할 수도 없고, 소유주라 하기도 그렇고 법적인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문맥을 반영해서 재벌 오너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오너라는 말은 주인이 맘대로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처음에 오너라는 말 자체를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재벌 죽일놈 말하지만, 막상 핵심은 소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소유한 것처럼 하는게 문제이고 나머지 사람의 재산권을 침해하는게 문제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벌 문제는 법적으로 사유재산 침해의 문제다. 우리는 전횡으로 이야기한다. 전횡은 독재자나 왕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도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 김경락 : 재벌 개혁을 하자고 하지만 그거 한다고 해서 나한테 돌아오는게 뭐가 있지. 정의감이 넘치거나 재벌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할 일이지, 일반 사람이 왜 동감을 해야하지. 바꿔말하면 재벌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퍼져 있지 않다 할 수 있는데, 재벌 개혁하면 뭐가 좋아지나?
- 주진형 : 자본주의의 장점을 현재 체제안에서 누리기가 어렵다. 그 문제가 재벌 문제다. 우리나라 주가, 장기수익률은 굉장히 낮다. 예를 들어서 미국이나 유럽은 3년 전에 견줘 30~50% 올랏다. 우리는 안 그래. 일본도 안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자본 시장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험 자본은 더 높은 수익을 주기 때문에 투자가 몰린다. 일본이나 한국은 그게 안 된다. 일본은 경제의 역동성이 줄었다. 정부가 뭐해라 나서면 하던 ’엔진’이 빠지니 그 다음을 못 찾는거다. 자본시장이 엔진으로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재벌이 컨트롤 하는 회사로만 자본이 쏠리고 있다.
두번째는 일본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경영자의 보수가 너무 낮다. 미국은 너무 높다고 하지만 우리는 낮다. 좋은 경영자에 대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부에서만 승진해 올라간다. 경영능력에 대한 경쟁이 없다. 좋은 경영자이면 다른 기업에서 데려가고, 똑똑한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찾을 방법이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삼성 내부에서 사장되는 사람은 입사동기 중에 제일 좋은 사람이냐? 절대 아니다. 이건희 회장의 가신그룹 사이에 끼어들어가느냐 마느냐에 달린 거다. 예전 이학수 부회장이 제일제당 시절에 경리부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학수 부회장 때 주요 계열사 사장을 했다.
또 한국에 와서 이해가 안가는게 기껏 좋은 사람 데려다놓고 임원을 대하는 태도가 머슴처럼 다룬다. 서양은 그러면 그 사람이 다른 데로 간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뭐 할려면 꾹 참고 가야해. 이게 어떤 문제를 가져올까. 민간 인력의 창의성이나 모험성이라든가 그런 것을 죽여버린다. 잘 보여야 올라가니까. 경제력이 몇몇 그룹으로 집중되어 있어서 기업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창업이나 외국 기업, 공기업이 아니면 재벌 밖에 갈 곳이 없다. 한 그룹에 들어가면 다른 그룹에 못 간다. 엘지에 가면 엘지에서 승부를 봐야한다. 한국 5천만 인구 중에서 기업에 온 굉장히 많은 사람을 재벌이 독식하고 제대로 안 쓴다는 거다. 입사 뒤 과장까지 정도만 진취적이고 차장, 부장 되면 눈치보고 보신주의를 자신도 모르게 익힌다. 위에서 받은 목표를 하달하고 쪼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승진한다.
- 김경락 : 대기업이 전체 고용 중 차지하는 일자리는 적어도 벌어들이는 수익은 많다.
= 주진형 : 국내 상장사의 매출이 2년째 그대로다. 그런데 2년에 걸쳐 사람 내보내고 구조조정하면서 이익률은 좋아졌다. 왜 한국사회가 양극화가 되느냐. 조세와 재정정책을 성장 위주로 한 게 하나의 이유라면, 재벌이 어떻게 하는지 설명이 어렵지만 재벌에게도 이유가 있다. 매출은 그대로인데 이익은 15% 올라갔다. 경제성장률이 전체적으로 내려오는 상황에서 인구의 일부분을 빼고는 압력이 세진 거다. 소득 하위층의 명목소득이 줄었다. 낙수효과라고 하는데 그동안 재벌이 드라이브를 건게 아니라 정부가 끌고 간 것이었다. 정책의 낙수효과였다. 이제는 정부가 경제를 정책으로 끌고가는 게 사라지니 낙수가 아니라 재벌이 이익을 펌프로 뽑아내고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체라고 하지만 꾸준하게 성장하는 역동성의 매커니즘은 정부가 했다. 정부가 빠지니 이 시스템의 지속적인 혁신의 엔진을 못찾았다. 지난 총선때 전국의 지방 시장을 찾아다니다보니, 소위 서울의 중심가 강남만 보면 한국 잘 돌아간다. 그런데 제가 가지 않던 곳에 가면 한국에 이런 곳이 있어 할 정도로 격차가 컸다. 가슴이 벌컥 벌컥 놀란다. (그렇다고) 재벌을 사법처리해봤자 양극화 문제에 도움이 안 된다. 대신에 중소기업에 자꾸 보조금 주자는데 거기는 재벌과 똑같다. 하나도 거버넌스가 재벌과 다를게 없다. 솔직히 뾰족한 수가 없다. 재벌 개혁에 대해 요약하면 ‘이거하면 된다. 저거하면 된다.’ 이런게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근대국가로서 핵심 기능을 만들지 않는 이상 아무 도움이 안된다. 재벌개혁에 너무 빠지지 말고 차라리 사법개혁을 쥐고 가는게 낫다. 재벌개혁을 해야하지만 너무 거기에 힘쓰지 말고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매커니즘을 찔러야 한다. 황제경영, 세습경영 하려고 기업 돈을 빼돌리는 재벌을 기소해도 2심가고 대법원 가면 집행유예로 나오게 하지 않고, 처벌이 가능한 양형이 가능하게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 재벌개혁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하는지 안하는지를 보면 안다. 그게 리트머스 시험지다. 회사법, 상법이 아니다. 그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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