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김상조(55) 한성대 교수가 17일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청와대 경제팀을 구성하기 전에, 장관급 가운데 가장 먼저 김 교수를 공정위원장에 내정한 것은 경제개혁을 일자리 창출, 검찰개혁 등과 비슷한 반열에서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뜻을 보여준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불공정한 시장 체제로는 경제위기 극복이 어려우며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급히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선 기간에 문 후보 직속의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된 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공약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 문 후보의 핵심 인사들과 함께 정부 출범 직후부터 개혁을 속도감 있게 시행하기 위한 ‘집권 100일 플랜’을 작성하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 이런 김 내정자가 임기를 시작하면 문 대통령의 재벌개혁,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 경제민주화 공약의 실천이 한층 탄력받을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인사말에서 “한국을 지칭하던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시장경제 질서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해 모든 경제 주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17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경제개혁 공약 가운데 공정위와 관련된 상당수는 김 내정자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대기업 조사 강화를 위한 조사국 신설, 법 위반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 강화 등을 포함한 공정위 개혁이 대표적이다. 각 시도 공정거래지원센터에서 지역 소상공인 민원을 신속히 해결하는 내용의 공정위-지자체 간 협력체계 구축도 마찬가지다. 하도급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공정거래 전 분야로 확대하고, 증권 분야에만 도입된 집단소송제를 소비자와 공정거래 분야에 도입하는 공약도 그가 평소 강조하던 내용이다.
김 내정자는 대선캠프 시절부터 개혁의 성공 전략으로 세가지 키워드를 강조했다. 공정위 조사국 신설 등 법 개정 없이 정부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법 집행 강화’와, 집단소송제 확대 등 ‘시장압력 강화’를 꼽았다.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의 경우 4대 그룹에 집중하되,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상법 개정 등을 통해 좀더 폭넓게 시행하는 ‘재벌개혁의 선택과 집중’도 강조했다.
김 내정자가 정식 취임하는 대로 공정위가 신속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가 1순위로 꼽힌다. 공정위는 이미 재벌들로부터 제출받은 내부거래 실태자료를 정밀분석 중이며, 이르면 6월 중에도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대규모 유통업체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과징금 강화도 법 개정이 필요없어 빠른 시행이 예상된다.
재벌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10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공정위 조사에 대비해 계열사 간 내부거래에서 문제될 소지가 없는지 세밀하게 살피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최악의 카드’는 피했다는 반응도 있다.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는 개혁의 선명성을 중시하기보다 개혁의 실행 가능성과 효과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개혁론자여서, 진보진영 일각에선 ‘변절자’로 비판하기도 했다”며 “개혁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공정위 역할 강화에 적극적인 김 내정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대선 이전부터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법 위반 기업에 대한 과징금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문캠프 개혁공약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준비 작업을 해왔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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