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오전 통의동 국정기획위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납품단가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꿔 올릴 수 있도록 하고, 대형 유통업체의 보복을 근절하는 조처를 확대해 ‘골목상권’ 영세 사업자를 보호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26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질 좋은 일자리 확대’에 동참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한주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 위원장은 이날 오전 공정위 업무보고를 받은 뒤 “대통령 공약과 내용이 일치해 (시행이) 확정된 (공정위의) 보고 내용”이라며 “하도급 납품단가에 지금까지는 원자재값 인상만 반영됐는데 앞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 조정도 반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중소 하청업체에 낮은 하도급 납품단가를 매겨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적정 임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종의 경우, 개발된 차종을 생산 판매하는 4~5년 동안 납품단가에 포함된 노무비는 오르지 않고 고정돼왔다. 이를 바꿔 노무비 조정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서 중소기업의 몫을 늘리고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효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노무비를 반영해도 다른 항목을 깎는 등 대기업이 납품단가 인상을 피해갈 방법은 있다. 대기업이 원·하청 임금격차 축소방안을 제시해 정부와 협의하거나, 4대 그룹과 (정부가) 단가구성 항목을 공개하겠다는 협약을 맺지 않으면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한주 위원장은 “대형 유통업체의 보복을 근절하는 조처를 확대하고 대규모 유통업체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다만 국정기획위 쪽은 징벌적 손배제 확대 대상 등 세부 내용에 대해선 “앞으로 추가 토론을 진행하면서 확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의 불법행위로 소비자 등이 큰 피해를 입을 경우 기업에 무거운 책임을 지워 이를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당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등 3곳에 ‘솜방망이’ 처벌(과징금 5200만원)이 내려지자, 지난 3월 국회는 기업의 제품(제조물 책임법)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 그래도 여전히 소비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보호 조처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공정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백화점·대형마트 등에도 확대해,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신세계 등 유통 분야 재벌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프랜차이즈 등 가맹사업본부와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가 ‘갑질’을 신고한 가맹점·대리점에 보복하는 행위도 원천 차단된다. 현재 가맹사업법에는 보복 조처를 금지하는 내용이 없어, 신고를 한 가맹점들이 오랜 소송기간 동안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국정기획위가 대통령 공약과 공정위 보고가 합의됐다고 밝힌 내용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 있다. 일자리 대부분이 중소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임금을 낮추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대형 유통업체 ‘갑질’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집단과를 기업집단국으로 확대해 재벌 개혁 차원에서의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거래 등을 조사하겠다는 계획도 업무보고에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완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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