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개발로 밀려난 필리핀 타워빌 주민들
봉제 사회적기업 세워 ‘자립’
의료·제과 등으로 사업 확대
‘1인 1표’ 총회에서 의사 결정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모델
봉제 사회적기업 세워 ‘자립’
의료·제과 등으로 사업 확대
‘1인 1표’ 총회에서 의사 결정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모델
“필리핀 사람들은 가난하긴 해도 잘 웃거든요. 그런데 여기 타워빌 주민들은 얼굴빛이 어두웠어요.” 필리핀에서 활동중인 국제개발 엔지오(NGO) ‘캠프’의 이철용(54) 대표는 타워빌 주민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낙천적인 사람들이 웃음을 잃은 것은 생활이 너무 막막했기 때문이다. 타워빌은 정부의 도시개발 정책에 밀려 강제이주된 주민 5만 여명이 사는 곳이다. 당국은 학교, 전기, 물 같은 기본 생활환경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 뿐이었다. 허허벌판에 금을 그은 작은 땅뙤기가 주민들에게 주어졌지만 그마저도 25년간 월세를 내야 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일자리 부족이었다. 이주민들은 대부분 마닐라 항만에서 하역 같은 막노동 하던 사람들인데 타워빌에서는 그런 일자리를 구할수 없었다. 마닐라로 다시 일하러 가는 것도 어려웠다. 일터까지 왕복 7시간 가까이 걸렸다. 하루 평균 임금이 300페소(한화 7천원)인 곳에서 교통비만 100페소가 들었다. 마닐라로 일하러 간 남자들은 교통비를 아끼려고 몇 주, 몇 달에 한 번 타워빌에 돌아왔고 그러다 차츰 발길을 끊었다. 가정이 깨지는 비극도 곳곳에서 빚어졌다. 결국 집을 버리고 마닐라로 돌아가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마을은 붕괴 직전이었다. “나라가 우리를 버렸다”며 주민들은 속울음을 삼켰다.
이러던 타워빌이 달라졌다. 이제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240명 직원의 일터인 봉제공장이 돌아가고, 봉제 국가자격증을 따려는 직업훈련생들도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일하는 동안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유치원과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도 돌아간다. 최근에는 베이커리와 유기농 양계사업도 새로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닌다. 그런 타워빌 사람들이 얼마전에 한국까지 찾아왔다. 5월 초 열린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 마을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선보이러 온 것이다. 사단법인 ‘캠프’의 이철용 대표를 비롯해 조부영 국제협력팀 팀장(27), 프로그램 매니저 레지(27), 봉제 사회적기업 ‘익팅’의 메릴린(42), 베이커리 담당 메튜(22)를 홍익대 근처의 한 카페에 만났다. 앉자 마자 ‘마을자랑’에 열을 올리던 이들은 “단순 위탁가공(OEM)을 넘어서 자체 디자인한 상품을 선보인 자리여서 기대되고 설레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며칠 후, ‘메이드인 타워빌’ 가방이 ‘완판’되었다는 소식에 함께 손을 잡고 함성을 질렀다.
‘1인 1표제’ 내 목소리 반영되는 ‘존중받는 일자리’, 마을에 활력 불러오다
이주민인 메릴린도 처음에는 “나라가 우리를 버렸다”고 울분을 토로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금은 타워빌에 있는 봉제 사회적기업 ‘익팅(Igting)’의 마케팅 담당자이다. 그는 “우리 힘으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울 뿐 아니라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우리가 하는 것이 익팅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익팅의 설립하는 동안은 한국 엔지오인 캠프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지만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도록 설계했다. 회사 운영은 구성원들이 선출한 회장과 위원회, 전체총회가 책임지고, 캠프는 익팅의 구성원 및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교육, 의료, 판로 개척 등의 지원을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일자리를 더 만들고 경제적 자립을 확고히 하기 위해 베이커리 사업, 양계 사업 등 같은 사업확장이 필요하다는 결정도 구성원들이 직접 했다. 애초 마을에서는 맥도날드의 매장 유니폼을 재하청 받아서 만들고 있었는데, 중간에 떼어가는 수수료가 너무 많았다. 익팅 직원들은 “우리와 직접 거래를 하자”며 마닐라의 맥도날드 사무소에 찾아갔고, 결국 일을 따냈다. 초기에는 캠프의 도움을 받아 수주한 한국쪽 주문이 매출의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국에 의존할 수 없다”며 내수시장 공략에 직원들이 열심히 달라붙고 있다.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주민들은 상처를 털고 자존감을 회복해갔다. 익팅의 모든 직원은 생산, 대외협력, 멤버십, 트레이닝 같은 개별 분과에 적어도 하나는 참여해야 한다. 회장은 1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해 선출하며, 한 달에 한 번 매출 등 중요 사안을 공개하고 토론하는 총회를 연다. 자신들이 주인이라 생각하기에 매출이 적은 달에는 “우리 임금을 깎아라, 회사 여유자금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를 말리는 캠프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캠프 사무실이 있는 곳은 원래 타워빌에서도 소문난 우범지역이었다. 하지만 수백명의 어머니, 아이들, 청소년들이 일과 교육 때문에 오가다보니 자연스레 활력이 생겼다. 구멍가게가 생기고, 트라이씨클(필리핀의 대표적 대중교통) 정류장이 생겼다. 익팅에서 모든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지금은 범죄 걱정 없는 새로운 타워빌의 명소가 되었다. 주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지역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시도가 작은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해외 원조, 공급자 중심 시각 벗어나야… ‘도울 방법’은 주민 안에 있어”
익팅의 운영 방식은, “타워빌에서 내 힘으로 잘 살아보고 싶다”는 주민들의 의지와 이를 존중하겠다는 캠프의 신념이 만난 결과다. “좀 도와달라”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타워빌을 찾아간 캠프의 이철용 대표는 사전조사에만 15개월을 쏟았다. 지역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은 ‘일자리’를 절실히 원했다. 한국과 필리핀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아이템 발굴에 골몰했다. 결론은 사회적 기업으로 ‘지역과 상생하는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타워빌 안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지역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생 교복을 1차 목표로 정한 봉제 공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역에 대한 존중은 캠프가 으뜸으로 삼는 원칙이다. 외부 지원을 받아 단시간에 큰 성과를 올리기보다 소박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소중했다. 또 새 시도가 마을 주민의 기존 생업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했다. 신사업인 베이커리와 유기농 양계도 다른 주민과 겹치지 않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의료 등 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많은 돈을 한몫에 지원받아 병원을 짓기보다 주민들이 자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촘촘히 개미집처럼 집들이 모인 타워빌에서 각 구역마다 당번을 정해 응급 환자 발생 상황을 체크한다. 캠프는 응급 후송 차량만을 지원했다.
캠프의 이철용 대표는 “한국의 해외 원조는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이다. 지역은 보지 않고 아이템을 먼저 정해서 ‘우물 파자’, ‘학교 짓자’ 한다. 단기에 보이는 성과를 원하니까 지원 끝나고 외국인 떠나면 멈춘다. 지역의 좋은 점까지 망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철용 대표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필리핀 국립대학교 지역개발학과를 찾아갔을 때 이런 행태의 부정적 영향을 절실히 느껴야 했다. 처음에 이 대학 교수진은 “결국엔 당신들 마음대로 하지 않느냐”며 도움주기를 거절했다. 몇 번이나 찾아가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끝에 협력과 자문을 얻었다. 필리핀 국립대학 지역개발학과에서 자문하고 타워빌에 학생들을 파견하면서 ‘캠프’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지역에 녹아들었다. 이철용 대표는 “지금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로만 알려진 필리핀이지만, 한국 주민운동 1세대가 필리핀에 가서 배웠다. 현지에 들어가서는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용 대표, “난 아무것도 몰라요” 현지 직원, “우리가 다 결정하니까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이 분들이 다 알아요.” 타워빌을 위해 지난 8년간 뛰어온 이철용 대표의 말이다. “주민들이 다 알고, 여기 직원들이 다 알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이 사람들에게 물어봐요”라는 이 대표 옆자리에는 “그래요, 나한테 물어봐요! 우리가 다 결정하거든요.” 라며 의자를 당겨 앉는 현지 직원들이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한 캠프 직원들은 주민들이 다시 설 토대를 만들기 위해 지원금 확보는 물론, 상처받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사소한 일까지 세심하게 챙겨왔다. 그런 이들이 "모른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신념의 표현에 가깝다. 1년 예정으로 봉사활동 하러 왔다가 대학 졸업도 미룬 채 5년 째 타워빌에 남아있는 조부영 팀장은 "처음엔 눈도 못 마주치던 마을 어머니들이 지금은 외국 손님들에게 당당하게 자기와 마을을 소개할 정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예전에는 국제기구의 화려한 커리어우먼을 꿈꿨는데,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 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메릴린씨는 거듭 "우리가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캠프에서 지원하는 유치원에 아이들 보내기는 하는데, 그건 우리가 일할 때만 맡아주는거에요. 우리 애들은 우리가 키워요. 우리 힘으로 안 한다고 오해하면 안 돼요" 메릴린씨의 눈과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우리가 다 하는 마을’에 외국 국기나 단체이름만 새겨진 채 버려진 우물과 흉물스레 남은 건물은 없다. "한국 사람들은 거들 뿐"이라는 원칙아래 ’돈 주는 사람들’이 뒤로 물러선 자리에는 주민들이 자기발로 일어서 있었다. 성장을 위해 사람이 쫓겨난 자리, 그 ’성장의 그늘’을 비추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을 찾은 ‘타워빌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sona@hani.co.kr
’익팅’의 직업교육생들이 패션쇼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사단법인 캠프 제공
’익팅’의 총회 모습. 사진 사단법인 캠프 제공
사단법인 캠프의 이철용 대표, 조부영 국제협력팀장. 사진 사단법인 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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