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 정책 가운데 하나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계획인 가운데, 강화가 현실화될 경우 상위 11개 재벌그룹 가운데 대상 기업이 현재 3곳에서 8곳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한겨레>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대규모기업집단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위 11개 재벌 계열사 가운데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 대상 기업은 한화에스앤씨(한화), 에스케이(SK), 유니컨버스(한진) 등이었다. 조사 대상은 총수가 있는 상위 11곳의 대기업집단인 삼성,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 엘지(LG), 롯데, 지에스(GS), 한화, 현대중공업, 두산, 신세계, 한진 등이다. 한진그룹은 2015년 자산 총액 기준으로 10대 재벌에 포함됐지만, 지난해 신세계에 자리를 넘겨준 바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를 넘을 경우 공정위가 불공정 내부거래가 있는지 조사할 수 있도록 한다. 새 정부는 규제 대상 총수일가 지분율을 상장사도 비상장사와 똑같이 30%에서 20%로 낮출 계획이다. 이를 적용하면 삼성물산, 이노션(현대차), 현대글로비스, 정석기업(한진), 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이 추가될 전망이다. 특히 이노션과 정석기업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총수 일가 지분율을 모두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29.9%로 낮춘바 있다. 현대글로비스도 2015년 총수 일가 지분을 내다 팔아 지분율을 23.3%로 낮췄다. 새 규제안을 30대 재벌까지 확대시키면 규제 대상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우선 통과시키기로 결정해, 이르면 6월 임시국회에서 규제가 강화된 공정거래법이 통과될 수도 있다.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면 총수 일가 개인에 대한 증여세가 부과된다. 대기업집단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30%가 넘고, 이 회사의 총수 일가 개인의 지분이 3% 이상이면 해당 총수 일가에게 해당 매출로 벌어들인 수익을 따져 증여세를 부과한다.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에 부가 증여됐다고 봐서다. 이 기준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증여세를 내야 할 총수 일가는 11개 재벌 가운데 삼성, 현대차, 한화, 신세계 등 4개 대기업의 계열사 8곳에 지분을 보유한 총수 일가다. 이번 분석은 재벌 총수 일가의 직접출자 지분만 대상으로 추정했다. 내부거래 매출액을 바탕으로 영업이익을 추정한 것이라 실제 과세와는 오차가 벌어질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로 최다 증여세를 낼 것으로 보이는 재벌 총수 일가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일가인 것으로 추정됐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총 약 30억원의 증여세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15억5천만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두 아들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도 각각 7억7천만원의 세금을 낼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 회장 일가가 부담할 증여세는 모두 한화에스앤씨에서 나왔다. 김동관 전무 등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스앤씨는 컴퓨터시스템 통합 자문, 구축과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데, 내부거래 비중이 67.6%에 달했다. 사실상 한화그룹 전산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과거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 시절에도 일감을 한화에스앤씨가 아닌 외부 계열사에 맡기려다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500억원 규모의 배당이 이뤄져서 해당 소득에서 대한 세금을 제하면 실제 부과될 증여세는 더 적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일가 가운데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세금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의 광고 대행을 맡고 있는 이노션과 자동차 엔진·부품을 만드는 현대모비스, 그리고 시스템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현대오토에버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3억3천만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2억3천만원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7600만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1600만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900만원 정도 증여세를 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서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각각 2800만원, 1900만원을 낼 것으로 보인다.
추정치를 살펴보면, 그동안 수십억원의 증여세를 낸 삼성·현대차 총수 일가들의 부담이 많이 줄었다. 이는 계열사의 인수 합병이나 지분 매각 등으로 지분율을 낮춘 탓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등은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수십억원 규모의 증여세를 낸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을 17.2%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 가운데 23.3%를 가지고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 에스케이씨앤씨(SK C&C)와 합병한 에스케이 지분을 23.4% 갖고 있는데, 이 회사의 매출 가운데 42.3%가 내부거래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지주회사가 되면서 과세 대상에서 빠졌다.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과징금 등 금전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공정위가 이르면 이번 달부터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재벌 대기업 11곳 가운데 6곳 내부거래 비중 늘어나
SK, 전체 매출의 23%로 가장 높아
11곳 내부거래 총규모는 7조5천억
국내 재벌 11곳 가운데 6곳에서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대규모기업집단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상위 11개 재벌 가운데 6곳이 전년 대비 국내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곳은 에스케이(SK)그룹으로 전체 매출 가운데 23.3%가 내부거래였다. 이어 현대차(17.8%), 엘지(LG·15.2%), 롯데(14.2%), 신세계(11.8%) 등의 순이었다. 11개 재벌의 내부거래 규모는 약 7조5천억원이었다.
2015년에 견줘 내부거래가 더 늘어난 곳은 엘지, 롯데, 삼성, 두산, 한진, 한화 등이었다. 이들 대기업의 내부거래 현황을 살펴보면, 시스템통합(SI)을 담당하는 계열사와의 거래가 두드러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은 삼성에스디에스(SDS)와의 거래가 75.6%로 가장 높았으며, 롯데그룹도 롯데멤버스(98.6%) 다음으로 롯데정보통신(91.5%)의 비중이 높았다. 한화의 경우, 한화에스앤씨(67.6%), 한진그룹은 한진정보통신(78.1%)이 높았다. 엘지의 경우, 운송관련 서비스업을 하는 판토스와의 내부거래가 60.0%로 가장 많았으며, 두산은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두산이 21.5%를 차지했다.
물론 재벌의 내부거래 비중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바로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삼성과 현대차의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수직계열화나 거래비용 절감 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거래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눈여겨보고 있는 ‘사익편취 금지규제’도 내부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불공정한 거래를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시스템통합(SI) 업체와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주의깊게 봐야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재벌 계열사들이 정보 보안을 앞세워 그룹 내 시스템통합 업체와의 내부거래를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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