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이후 반년 넘게 이어져 온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사태가 종식됐다고 선언하며 평시방역 체제로 전환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에이아이가 발생했다. 전국적 확산 가능성이 주목되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 에이아이와 관련해 ‘평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 만큼 상시적인 방역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일 제주도 제주시의 한 소규모 농가에서 고병원성으로 의심되는 에이아이(H5N8형) 감염이 발생한 데 이어 3~4일에는 전북 군산, 경기 파주, 경남 양산, 부산 기장에서도 잇달아 에이아이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농림부는 4일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에이아이 발생 시·도 및 인근 지역 주요 도로를 통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번에 발생한 에이아이의 고병원성 여부는 5일 오후께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이아이는 철새가 도래하고 바이러스의 활동성이 높아지는 반면 소독 등 방역효과는 떨어지는 겨울철에 주로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고병원성의 경우 전파력이 높아, 여름철에도 전국적 확산 가능성을 높인다.
앞서 농림부는 지난달 30일 ‘사실상 에이아이 종식’을 선언했다. 이어 1일 오후부터 위기경보 단계를 평시를 뜻하는 ‘관심’으로 내리고, 평시방역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24시간여 만인 2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의 한 농가에서 에이아이 의심 사례가 신고돼 하루 만에 다시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로 올렸다. 토종닭 7마리를 키우던 제주시 애월읍의 농장주가 지난달 27일 시장에서 산 오골계 5마리가 29일부터 30일 사이에 전부 폐사했고, 사흘 뒤인 2일 기존 토종닭 3마리도 추가로 폐사하자 당국에 신고한 것이다.
역학조사 결과, 이 오골계는 전북 군산의 1만5000여마리 규모의 종계농장에서 유통된 것으로 확인됐다. 에이아이가 발생한 5개 시·군 농장 모두 해당 농장에서 오골계를 사들였다. 농림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발생한 에이아이는 모두 군산에서 이동된 것인데, 만약 2차 감염원이 발생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다면 그때부터는 전국적 확산으로 본다”며 “아직까지 추적이 안 되는 개체가 상당수 있어 전국 확산 우려가 높다”고 했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군산의 농장이 전북 정읍에 팔았던 오골계 150마리 중 30마리가 폐사해 19일 나머지를 회수했고, 그 이후 군산 농장에서도 집단 폐사 현상이 발생했다”며 “정읍이 에이아이 발원지일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에이아이가 지난봄 유행했던 에이아이의 잔존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당국이 너무 섣부르게 ‘에이아이 종식’을 선언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농림부는 두달 가까이 추가 발생이 없었고 방역지역 내 가금농장에 대한 정밀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방역 사각지대인 무허가 소규모 농장과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에이아이에 감염된 닭이 여전히 유통 중이었던 것이다. 제주에 오골계를 유통했던 중간상인은 지난달 29일부터 매일 80~90마리가 집단 폐사했음에도 방역당국에 신고하지 않았고, 정부도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평시’와 ‘전시’를 구분해서 대응하는 기존 방역체계 자체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김재홍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이번 경우처럼 확인되지 않은 에이아이 바이러스가 항상 어딘가에 잔존해 있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상시적 방역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인필 충남대 교수(수의학)는 “꾸준하게 관련 정책이 추진되려면 방역 담당 부서가 격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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