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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미래> 조영태 지음, 북스톤(2016)
<정해진 미래> 조영태 지음, 북스톤(2016)
저출산 등의 이유로 전교생이 180여명에 불과한 서울 강서구 개화초등학교 1학년 한반 학생 9명이 지난해 담임선생님과 함께 수학,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조 교수 판단으로는 첫 딸이 19살이 되는 2021년 이후에는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가 지금보다 한결 수월해진다. 지원자가 대학 정원에 미달하는 시기가 눈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들어가는 대학이 주는 프리미엄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한 해 100만명이 태어난 세대에 비해 50만명이 태어난 두 딸 세대는 좀 더 유연한 생애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꼭 고3을 마치고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신 베트남 같은 곳에서 몇 년 살아보고 마음 내키면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조 교수는 “초등학생 자녀의 대입 혹은 대졸 이후 삶을 설계하면서 현재의 대입 경쟁률과 대졸자의 삶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니겠는가”라고 질문한다. 자녀 문제가 걸리면 ‘옆집 따라 하기’를 벗어나기 어려운 한국사회 부모 입장에서 조 교수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인구만큼 강하게 미래를 예견하는 것도 드물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인구구조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라고 했다. 조 교수가 자신의 책 제목을 <정해진 미래>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도 개인도 제대로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해 조 교수 말대로 어느 때보다 인구의 관점에서 미래를 볼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 인구의 눈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내 아이 때는 대학 가기 쉬워지고 청년실업은 완화될까? 2015년 대학 수험생은 64만명, 대학 정원은 약 52만명이었다. 조만간 고3 학생 수가 40만명대가 되는데 진학률이 지금처럼 70%라면 약 20만명 이상 정원이 남게 된다. 4년제 대학입시 실질경쟁률은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저출산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는 2021년에 1 대 1이 되고 2025년에는 0.96 대 1로 더 낮아질 전망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실질경쟁률은 2.8대 1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다. 즉 “10년 내로 모든 수험생이 4년제 대학에 무리 없이 입학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학벌 사회가 계속되는 한 이른바 ‘인서울’ 또는 명문대를 위한 경쟁은 계속되겠지만 그 치열함은 지금보다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조 교수는 “수요-공급의 원칙이나 ROI(투자수익률)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제 대학입시에 가정의 소득과 시간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1세대는 1955~64년생, 2세대는 1965~74년생을 말한다. 2014년부터 이 세대의 은퇴가 시작돼 앞으로 20년간 매년 70만~90만명이 퇴직하게 된다. 이들의 빈자리를 신규채용으로 채운다면 지금의 극심한 청년실업은 서서히 풀려갈 것이다. 실제 청년 인구 감소로 10년 이내에 우리 산업의 성장이 제약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엘지경제연구원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시장이 축소되거나 은퇴자가 재취업에 나서면 생각만큼 신규고용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저출산·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최근에는 청년 완전고용 시대가 됐다.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발휘하기 전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에도 불구하고 신규고용이 감소했다. 이것이 아르바이트를 생업으로 하는 ‘프리타’ 족이 양산(15~34살 인구 중 6~7%)된 배경이기도 하다. 어느 직업이 위기이고 어느 직업은 괜찮을까?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40만명 아래로 내려가는 시대에 직접 영향을 받는 곳은 신입생 100만명 시대를 감당했던 교육 영역이다. 우리나라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014년에 14.7명으로 감소해 이미 미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슷해졌다. 학생 수는 앞으로 계속 줄어든다. 그래서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나 사범대를 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학원 등 사교육 시장도 위축되고 있다. 대학이라고 다르지 않다. “앞으로 10년간 전국의 사립대학에서 38%에 이르는 교수와 교직원을 감축하지 않으면 학교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조 교수는 “대학이 없어지는 마당에 교수가 되기도 어렵고, 된다 해도 과거와 같은 권위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의 신규 진입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이들처럼 “은퇴가 없는 노동시장은 빈자리가 나지 않는 한 신규세대가 들어갈 길이 없다. 게다가 기존 세대는 신참이 가질 수 없는 경험과 암묵지(暗默知)가 풍부”하다는 게 이유다. 지금 취업해 있는 경우 자신이 속한 산업의 장래도 생각해 볼 일이다. 신생아가 줄어들면서 분유, 아동복에서 시작해 교복, 테마파크 등으로 한기가 번지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피아노 판매량은 1992년 18만7천대에서 지난해에는 3600대로 쪼그라들었다. 가구 구성이 1~2인 가구 위주로 바뀌면서 대형마트와 백화점 패밀리 레스토랑의 매출이 줄고 편의점과 동네슈퍼의 매출은 늘고 있다. 앞으로 유행에 덜 민감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신발·의류 산업과 문화오락 산업도 위축될 것이다. 다만, 건강기능식품 등을 제조하는 보건의료 쪽은 그래도 전망이 나은 편이다. 일자리에 대한 전망에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변수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지능정보기술의 발달이다. 인구변화 못지않게 로봇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발달은 일과 일자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메가트렌드’이다. 2016년 다보스 포럼은 현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65%가 지금 있지도 않은 직종에서 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처럼 부동산이 무너지고 경제가 나빠질까?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경기 하강, 자산가격 하락, 소비 위축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인구절벽’이다. 집을 가진 중년은 아파트를 팔아야 하나, 집이 없는 젊은층은 사지 말고 버틸까를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부동산 가격은 생산가능인구 동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15살에서 64살 사이의 노동 가능한 인구를 일컫는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 정점을 찍고 2017년부터 감소하게 된다. 2020년대에는 한해 34만명씩, 2030년대는 한해 44만명씩 감소하다.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나서 경제성장에 촉진제가 되는 인구보너스를 받지만 우리는 인구 마이너스(오너스) 시대로 바뀌게 된다. 경제평론가 선대인은 <일의 미래 :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인플루엔셜)에서 2021년께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매년 10만~15만호 정도 주택 수요가 줄어들어 30년 뒤에는 2015년에 우리나라에 있는 총주택의 15%에 해당하는 300만호의 수요가 줄어든다고 예측한다. 인구 고령화도 주택 수요에 영향을 주는데 은퇴한 노인은 상식적으로 볼 때 주택 매도세력일 것이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한해 50만명 증가하고 그 3분의 1만 주택을 매도해도 5만호가 공급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둘을 합치면 20만호의 수요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 1997년 무렵부터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계속 빈집이 늘어났는데 그 뒤를 우리가 따를 것이란 예상이다. 소비 위축에 의한 저성장도 불을 보듯 확실하다고 본다. 선대인의 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2030년 무렵까지 매년 상당히 큰 폭의 소비감소가 이어져 2013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35년에는 88.1로 줄어든다는 추계를 보여준다.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계속 소비규모가 늘어나는 사회에서만 살다 반대로 줄어드는 것이라서 체감 소비감소는 클 수 있다. 이럴 경우 기업의 실적은 악화하고 주가는 오를 일이 없으며 새롭게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있는 일자리도 줄이게 된다. 조 교수는 “지금의 20대가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 말하는데, 그보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저출산 세대의 장래가 더 어둡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금융시장 분석가인 홍춘욱은 <인구와 투자의 미래>(에프엔미디어)에서 베이비붐 세대 은퇴를 계기로 자산시장이 붕괴하고 일본형 장기불황에 접어들 것이란 가설은 틀렸다고 말한다.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인구가 감소한 나라 가운데 일본처럼 장기불황을 겪은 나라가 없다는 거다. 독일도 일본처럼 1990년대에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20년 전보다 독일경제는 30% 커졌고 부동산 가격은 1.1배, 주가는 5.2배 상승했다. 일본 자산시장 붕괴도 인구감소보다는 ‘거품’과 당국의 연이은 정책 실패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 2015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주로 구매한 계층이 의외로 50~60대인 점도 통념을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홍춘욱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 부동산은 아주 일부 지역을 빼고는 거품이 없어 일본처럼 붕괴할 염려가 없고, 주가도 가치 대비 낮은 가격(사상 최저 PBR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면서 인구절벽론 같은 “미신에 속지 말고 맘 편하게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인구변화는 비교적 근접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산가격 변화나 경제의 변화 같은 것은 다른 변수가 무수히 개입하기 때문에 이처럼 서로 다른 예상이 나오는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 아래는 저자인 조영태 교수와의 인터뷰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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