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재벌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주 전 취임식 때 ‘김상조표 재벌개혁’ 방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던 터라 공정위 기자실은 임시좌석도 모자랐다. 김 위원장은 본론에 들어가기 전 먼저 할 말이 있다며 정색을 했다. “최근 치킨값 인상 철회에 대해 많은 언론이 ‘김상조 효과’라고 보도했는데, 공정위는 물가관리기관이 아닙니다.”
대다수 언론은 공정위의 비비큐(BBQ) 조사에 대해 ‘치킨값에 칼 빼든 공정위’라고 보도했다. 공정위 조사는 비비큐가 가맹점주들에게 광고비를 부당하게 전가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마치 비비큐의 치킨가격 인상을 겨냥한 것처럼 보도했다. 비비큐, 교촌, 비에이치시(BHC) 등 치킨 프랜차이즈 3사들은 즉각 가격인상 철회 또는 할인판매에 들어갔다. 대다수 언론은 ‘공정위 칼날에 치킨업계가 백기를 들었다’면서 일제히 ‘김상조 효과’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 직후 기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김 위원장은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이나
담합이 아니라면 공정위가 개별기업의 가격결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면서 “앞으로 공정위가 시장에 개입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공정위 직원 중에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한 직원은 “언론보도가 공정위 조사 취지에 맞지는 않지만, 치킨가격 인상 철회는 서민들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인데 굳이 정색하고 지적할 필요까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직원은 2011년 김동수 위원장 시절 공정위가 물가단속에 앞장섰던 부끄러운 역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김동수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뒤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사표를 쓰라”고 엄포를 놓으며 조사권을 앞세워 물가단속을 독려했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맞지 않다. 당시 공정위 간부 출신 한 인사는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취지는 정부가 민간의 가격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물가불안의 근본 원인이 되는 독과점적 시장구조의 개선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이라며 “공정위의 물가단속은 ‘시장경제 파수꾼’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혀를 찼다. 세계적인 경쟁분야 전문지인 영국의 <국제경쟁저널>이 발표하는 각국 경쟁당국 평가에서도 한국 공정위의 순위가 떨어졌을 정도로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과 경제개혁을 위해 강조하는 ‘엄정한 법집행’의 취지가 왜곡될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한 간부는 “공정위가 ‘칼을 빼들었다’거나, 치킨업계가 ‘무릎 꿇었다’ 식의 보도가 적절치 않다”면서 “공정위의 법집행 강화는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한 것인데 자칫 정권의 성격에 맞춰 조사권을 남발한다는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보수언론이 지금은 ‘김상조 효과’라고 박수를 보내지만, 재벌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조사 등 대기업 조사가 본격화하면 ‘대기업 길들이기’나 ‘군기잡기’라며 비판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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