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7 사회적기업 국제포럼’에서 아시아 사회적기업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제공
국내 사회적 경제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사회적 경제를 이해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으로 몇 년간 국회에 계류 중인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통과되리란 기대가 크다. 반면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 여러 부처가 과도하게 현장을 이끌거나 관리하려 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한쪽에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의 성장에는 정부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공공 조달에서 사회적기업에 우선권을 주는 것도 사회적 경제가 경영효율만을 추구하지 않아 일반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하더라도 사회적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에 반영될 통로는 열려 있어야 한다. 지원하고 감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꾸려가는 파트너로서 정부와 사회적기업 관계 맺기가 중요한 이유다.
이는 사회적 경제의 고향으로 알려진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아시아 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7 사회적기업 국제포럼’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베트남, 일본, 중국, 타이 등 아시아의 사회적기업가들도 이 주제에 집중했다. 아시아 5개국이 사회적기업과 정부가 맺는 관계를 들여다보자.
타이 “2009년부터 법제화 시작”
타이는 국가의 적극적 추진으로 관련 제도의 정비가 앞선 나라다. 도이뚱 커피 등 사회적기업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비즈니스모델로 성공한 사례도 나왔다. 타이의 사회적기업 법제화는 2009년 타이사회적기업진흥위원회(TSEB)가, 이듬해 타이사회적기업사무소(TSEO)가 설치되며 시작한다. 매팔루앙 재단의 디스빠나다 디스꾼 부사장은 “그 뒤로 5개년 기본계획과 대규모 자금 투입 등 국가의 적극적인 추진이 있었고, 지금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도 해준다”고 말했다. 기업사회책임(CSR) 자금 등 사회적 가치에 투자 가능한 자금을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 쪽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도 포함된다. 디스꾼 부사장은 “정부의 적극적 추진은 큰 힘이 되었다. 다만 현재 마련 중인 사회적기업진흥법에는 시민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제안했던 대출, 공공 조달 등이 빠진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왕실과 정부가 빈곤퇴치와 균형발전을 위한 방책으로 사회적 경제를 육성했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좀더 효과적인 지원과 성장을 위한 소통이 필요해진 것이다.
말레이시아 “법 제정하고 국민 인식 높이는 게 과제”
국무총리실 산하 말레이시아혁신처(AIM)의 부회장인 에제디네 압둘 라작은 “사회적기업의 활동을 통합적으로 지정하고 지원하는 근거법은 없다”면서도 “내용 면에서 사회적기업으로 볼 수 있는 기업은 200개 정도”라고 밝혔다. 근거법이 없기 때문에 일반기업이나 비영리단체로 등록한다. 세제 혜택, 초기자금 대출, 판로 개척 등 지원은 미미하다. 2010년 설치된 말레이시아혁신처나 기업가 정신 고양을 위해 정부가 자금을 댄 매직(MaGIC) 같은 기관이 있지만, 체계적으로 사회적기업을 관리, 지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에제디네 부회장은 “말레이시아는 종교에 기반을 둔 기부문화가 발달했다”며 “법을 만들고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등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을 높여가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베트남 “사회적기업 못미더워하는 시선 걸림돌”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인 베트남에서 사회적기업은 아직 낯설다. 베트남 정부는 민주적 의사결정, 지역 사회 및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활동을 인정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비영리단체도 아니고 기업도 아닌 형태를 못미더워하는 경향도 있다. 베트남 국립경제대 쯔엉티남탕 교수는 “비영리단체 활동이 자유롭지 않으니까 기업의 이름으로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고 전한다. 쯔엉티남탕 교수는 “제도적으로 아직 어렵다”며 “기업법 10항에 사회적기업의 등록에 대해 간단히 명시가 되어 있을 뿐 면세, 공공 조달 우선구매, 보조금 지급 등 혜택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사회에도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통한 자립의 욕구가 강해지고 있는 만큼 법 제도 개선과 지원책 정비를 통해 사회적기업을 키워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일본 “이르면 9월 사회적기업법 제정 기대”
일본은 독특한 사례이다. 노동자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경제 조직이 활발히 활동하지만 총괄하는 법 제도가 없다. 사회적 경제 조직은 그래서 일반음식점이이나 비영리단체(NPO) 등 다양한 법적 지위로 활동한다. 소속 부처도 후생노동성, 법무성, 경제산업성, 내각부 등으로 다르다. 주무 부처에 따라 지원금, 활동의 신청 및 실행 방식도 달라진다. 사회적 경제의 법제화에 앞장서고 있는 ‘소셜펌 재팬’의 나카자키 히토미씨는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도쿄 도지사 고이케 유리코를 중심으로 초당파 의원 모임이 결성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관할 부처를 지정하는 문제가 매우 예민해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다”며 “그렇더라도 이르면 9월 주무 부처를 지정하고 사회적 경제 조직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사회적기업법이 통과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중국식 사회적기업 모델 탐색중”
사회적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와 사회는 호의적인 편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경제?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기업법 등은 없다. 위안루이쥔 베이징대 교수는 “베이징시가 2010년 공문서에서 ‘사회적기업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민간기구에 연락하는 정부 인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단체인 중국사회적기업연합기구(CSEIF)가 연구, 의제 발굴, 제안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 법체계를 만들 때가 됐다는 인식은 퍼졌고, 정부를 설득하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기업법을 제정하면 등기를 통한 법인제를 시행할지, 국가인증제를 시행할지 연구하는 중이라고 위안 교수는 전했다. 중국에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국영기업에 대해 위안 교수는 “사회적기업은 기본적으로는 민간조직을 말하기 때문에 국영기업과 사회적기업은 같을 수 없다”면서도 “국영기업의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가 중요한 척도가 되는 등 방법이 다를 뿐 목적은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간이 연구를 이끌고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중국식 사회적기업 모델’을 탐색해가는 단계다.
이날 국제포럼의 발제자 및 토론자로 나선 각국 전문가들은 “제도적 환경 개선은 꼭 필요하나 그 과정에서 현장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의 에제디네 부회장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면서도 아시아의 사회적 경제는 지나치게 정부 의존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타이의 디스꾼 부사장 역시 “정부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면 오히려 사회적기업 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정보가 생산되는 것이 현장이기 때문에 상향식 소통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나카자키 히토미씨는 “자립이 가능한데 꼭 근거법을 제정해 사회적기업으로 묶여야 하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기업 인증 방식, 지원 제도 등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법상 ‘사회적기업’ 명칭은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기업 운영 내용 측면에선 사회적기업이면서도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인증을 받지 않는 기업도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을 지낸 김재구 교수(명지대)는 “정책 의지는 높이 사나 지금껏 이끌어온 주체는 사회적기업 당사자”라며 “인증제에서 한발 나아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받쳐주는 협치를 상상할 때”라고 말했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