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렉스타의 권동칠 사장(맨 왼쪽)이 폴란드의 유명 등산가 비엘리스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산악인 엄홍길씨. 트렉스타 제공
‘무거운 등산화’ 편견 깬 편안한 제품 첫선
브랜드 띄우자 하청 주던 기업들 문전박대
발로 뛰며 판로개척…10년만에 점유율 1위
강소기업이 뛴다/③ 트렉스타 등산화를 사려고 가게를 기웃거려본 사람이라면, ‘트렉스타’라는 브랜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94년 무거운 등산화가 대세이던 시절, 부산의 작은 신발회사에서 개발된 트렉스타는 10여년 만에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 등산화 시장의 흐름을 중(重)등산화에서 경(輕)등산화로 바꿔놓았다. 애초 트렉스타는 국외 유명 등산화의 하청기업으로 출발했다. 자체적으로 디자인이나 기능을 개발해 주문자에 제안하는 오디엠(ODM) 방식으로 운영됐다. 업계에서는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자체 브랜드에 대한 욕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권동칠 사장은 털어놓는다.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데 왜 무거운 등산화를 신을까. 가볍지만, 기능만 좋으면 더 편하고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벼운 등산화로 독자브랜드를 갖기로 마음을 먹은 뒤부터는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막상 시작은 했는데 걱정이 많아지더군요. 주문자의 눈 밖에 날까봐 모든 샘플작업은 일이 끝난 뒤에 했고, 생산은 주말에만 했습니다. 갑자기 주문이 끊기면 회사가 휘청거리니까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했죠.” 트렉스타가 세상에 나온 뒤, 기분나빠하는 주문자들을 설득하느라 권 사장이 직접 찾아다니며 빌었다. 문전박대의 수모까지 겪으며 간신히 양해를 구했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가벼운 등산화가 탄생했지만, 마케팅 비용도, 유통망도 없는 중소기업에게 판로개척은 먼 일이었다. 모든 직원이 “몸으로” 뛰었다. 산 밑에 제품을 잔뜩 지고 가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빌려주기도 했다. 또 모든 직원들이 각자 친척과 친구에게 몇켤레씩 선물하면서 제품을 알려나갔다.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등산객들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면서, 트렉스타는 급성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본사가 있는 부산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어 마산과 창원, 대구 등으로 퍼져갔다. 권 사장은 “현재 부산은 트렉스타의 점유율이 70%를 넘는데, 서울은 아직 30~35% 수준”이라며 “수도권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트렉스타의 등장 이후, 현재 등산화의 주류는 가벼운 등산화다. 스키부츠 처럼 딱딱하던 인라인스케이트에도 가볍고 부드러운 소프트부츠를 도입했다. 역시 처음에는 전혀 안팔리다가 이제는 업계 판도가 소프트부츠로 역전됐다. 권 사장은 “트렉스타의 장점은 차별화”라고 강조한다.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삐딱한 시선으로, 항상 제품의 문제점을 찾아 내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제품이 탄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옷은 여름 겨울 따로 입으면서 신발은 왜 하나만 신을까”하는 의문은 자연스레 여름등산화, 겨울등산화의 개발로 이어졌다. 어린이용 등산화의 경우, 발은 계속 자라는데 등산화를 커가는 발에 맞춰 계속 사들이기는 부담스럽다는 점에 착안해, 버튼을 누르면 밑창과 신발 몸체가 15㎜까지 늘어나는 등산화를 만들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같은 제품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어요.” 요즘은 고무 신발창을 대신해 땅의 ‘기’를 모두 빨아들이는 천연소재로 된 신발 밑창을 연구 중이다. “맨발로 등산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땅의 기를 받아야하는데, 지금은 고무 신발창이 차단막 구실을 하고 있어요. 미역, 다시마, 소나무 속껍질 등 온갖 재료를 이용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현재 트렉스타의 매출 가운데 자체 브랜드 비중은 50%다. 앞으로는 80%까지 높일 계획이다. 세계적인 트렌드도 보고 정보도 파악하는 차원에서 10~20%는 꾸준히 오이엠·오디엠 영업을 할 방침이다.
권 사장은 “하청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면, 주문자들은 자신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해 주문을 바로 끊어버리거나 싹을 잘라버리는 위험이 있다”며 “이 때문에 오이엠 기업이 자체브랜드를 갖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체브랜드는 어려워도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자체 브랜드는 ‘자식’이고, 오이엠은 ‘손님’입니다. 그것도 부자손님이죠. 올 때마다 고기와 과자를 싸들고 오지만, 하루 이틀 있을지 1, 2년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 사회·문화적 수준이 많이 높아졌고 중국이라는 유망한 성장시장이 옆에 있어, 우리 브랜드를 가지면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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