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의 청와대 모임에 참석한 14대그룹이 그동안 발표한 ‘일자리·상생협력 대책’이 소리는 요란했지만, 정규직 전환 등 일자리 대책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청와대 모임에 참석한 14대그룹의 일자리·상생협력 대책을 보면,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케이티(KT) 등 5개그룹이 상생협력을 위해 새로 만들거나 증액하겠다고 밝힌 협력사 지원용 펀드(기금) 규모는 총 1조3100억원에 달한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7천억원으로 가장 많고, 에스케이 3천억원, 현대차 1500억원, 케이티 1000억원, 엘지 600억원 등이다. 대부분 펀드를 이용해 협력사가 운영자금이 필요하거나, 1차 협력사가 2·3차 협력사에 물품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할 때 무이자 또는 저리로 대출해주겠다는 것이다. 협력사 대출비용은 펀드나 기금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입으로 충당된다. 시중은행의 지점장은 “최근 기업들의 정기예금 금리가 대략 2%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1조3천억여원의 펀드(기금) 조성을 통해 실제 지원금은 연간 26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지에스(GS)는 편의점 가맹점주를 위해 향후 5년간 9천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설비투자를 빼고 최저수입 보장과 전기료 등 직접 편의점 지원에 사용하는 돈은 매년 750억원, 총 3750억원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두산은 2·3차 협력업체와 영세 사내하도급 등의 근로자에 1인당 연간 120만원씩 추가임금을 지원한다. 최종 지원대상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약 2350명 정도로 추산돼, 연간 지원금액이 28억원 정도다. 이들 7개 그룹이 발표한 상생협력 대책의 연간 지원효과를 모두 합치면 최대 1040억원으로, 그룹당 149억원 수준이다.
가장 관심을 끈 정규직 전환 대책을 내놓은 곳은 14개 그룹 가운데 에스케이·롯데·한화·두산·씨제이 등 5개 그룹뿐이었다. 이들은 1만2841명(올해 기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집계한 2017년 3월 기준 5개그룹의 전체 비정규직 17만7천여명(무기계약직 포함)과 비교하면 7.3% 수준이다. 10대그룹의 임원은 “비정규직을 일단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에는 경영이 어려워져도 비정규직으로 재전환하거나 내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또 대한상의 임원은 “상생협력 방안은 지원금액의 크기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생태계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도 노동계의 주장(무기계약직을 비정규직에 포함)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재계가 자발적으로 발표한 일자리와 상생협력 방안이 미흡한 측면이 있는데도 문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오히려 감사의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재계도 의외라는 분위기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새 정부가 재계의 솔선수범을 강하게 요구한데다, 국민의 기대도 높아 솔직히 많이 긴장했는데, 대통령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일자리와 상생협력,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고 안도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재계는 8월말 새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민간용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대기업들의 추가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강요하는 게 사실상 쉽지 않고, ‘상시·지속적인 일자리의 정규직 사용’ 원칙에 대해서도 재계는 예외조항 확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어 큰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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