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정책심의위원회(심의위)가 11일 공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8차 수급계획, 2017~2031년)’의 설비 분야 초안에서는 신규 핵발전소을 더 짓지 않을 경우 ‘적정 설비예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향후 신규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설비 부족분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와 신재생에너지로 보완하겠다는 밑그림도 담고 있다. 이례적으로 초안을 공개한 배경에는 최근 정부가 ‘탈원전 로드맵’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비 예비율을 낮추려 한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응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력 시장에서 ‘적정 설비예비율’은 발전소의 고장이나 정비 등 예상치 못한 비상상황에 대비해 발전설비를 얼마나 넉넉하게 확보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설비예비율을 10%로 정하면, 100GW의 전력이 필요할 때 110GW를 생산하는 것을 뜻한다. 설비예비율은 고장·정비 상황을 반영해 정하는 ‘최소 예비율’과 전력 수요가 갑자기 변하거나 발전소 건설이 늦어지는 상황을 반영한 ‘수급불확실 대응 예비율’을 합쳐서 계산한다. 2015년 발표한 7차 수급계획에서는 최소 예비율 15%에, 수급불확실 대응 예비율 7%를 더해 모두 22%의 예비율이 적정 수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설비계획 초안 공개 기자회견에서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단상 오른쪽 둘째)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초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설비예비율 감소다. 2030년 설비예비율 20~22%로 7차 계획보다 최대 2%포인트 줄었는데, 원전 2기(2GW)를 건설하지 않아도 되는 규모다. 건설비로 따지면 9조원(1기당 4조5천억원)에 이른다. 심의위는 예비율이 줄어든 이유로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중단을 꼽았다. 심의위원장인 김진우 연세대 특임교수는 “발전소 규모가 크거나 고장률이 높아지는 경우, 그리고 정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최소 (설비)예비율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즉, 핵발전소는 발전량도 많은데다 예방정비와 고정정지 등으로 1년의 약 20%인 76일을 세워야해, 대신 전기를 생산할 예비용 발전소 규모도 크다. 반면 엘엔지발전소는 1년의 12%인 44일간 가동이 정지돼 예비율에도 적게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는 “원전을 덜 짓고 엘엔지가 늘어나면 설비예비율도 그만큼 줄고, 실제로 필요한 전력에 적용할 예비율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향후 8년 동안은 발전소가 부족하지 않아 엘엔지 발전소나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대신 2026년부터 발전설비가 0.4~5GW 부족하게 되고, 2030년에는 5~10GW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은 “엘엔지 발전소 등은 8년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 변동성 전원(일조량·바람 등으로 전력생산이 일정치 않은 발전 형태)의 설비용량은 2030년에 이르면 48.6GW까지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한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려면 독일처럼 예비율을 13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심의위는 해명을 내놨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우리나라와 독일은 예비율 계산 방식이 다르다”며 “독일은 발전용량을 합친 수치를 단순히 예비율에 반영하는데, 우리나라는 피크 기여도(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시간에도 발전이 가능한 용량)를 기준으로 따진다”고 설명했다. 또 “신재생에너지로 부족한 발전설비를 늘리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출력 변동성(핵발전·석탄발전과 달리 전력 생산량이 일정치 못한 점)은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 등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초안을 바탕으로 10월 8차 수급계획의 확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성환 최하얀 기자
hwany@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