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한진그룹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제재와 관련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공정위와 한진이 제재의 적법성 여부를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2014년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재벌이 공정위의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으로는 첫 선고이고, 공정위가 패소할 경우 향후 법집행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 재판부의 결정이 주목된다.
30일 공정위와 한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재판장 김용석 부장판사)는 오는 1일 한진그룹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와 관련한 사건 선고를 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대한항공이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통해 회사 지분을 100% 가진 조원태·현아·현민 등 한진그룹 3세들에게 부당이익을 제공한 혐의로 과징금 14억3천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한항공·싸이버스카이·유니컨버스는 공정위 제재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공정위 제재의 근거인 공정거래법 23조2(총수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조항을 둘러싼 해석 차이다.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신설된 23조2는 이른바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로 알려져 있는데, 자산 5조원 이상 재벌 대기업에 속한 계열사가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인 다른 계열사를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규제대상 행위 유형으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사업기회 제공’, ‘일감몰아주기’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한진은 “법문에 적힌 대로 총수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여부가 관건인데, 공정위가 ‘부당성’ 요건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정위는 “일반 부당지원행위 규제(법 23조1항7호)는 부당성(공정거래 저해성)의 입증이 필요하지만, 총수일가 부당이익 제공 금지 규제는 입법취지 상 그럴 필요가 없고, 한진 사건은 규제대상인 ‘정상거래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해당돼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공정위의 설명은 기존의 부당지원행위 금지 조항이 있는데도, 총수일가 부당이익 금지 조항을 새롭게 도입한 입법 취지로 볼 때 설득력이 있다. 2013년 당시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심사보고서를 보면, 박민식 위원장(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23조2항 신설 취지와 관련해 “총수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와 관련해서는 ‘공정거래 저해성’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기존 23조1항7호에 따른 부당지원행위 제재는 법원의 부당성에 대한 엄격한 입증 요구로 인해 재벌 2~3세들의 편법 승계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문제점이 나타나 법개정이 이뤄졌다”며 “법원이 한진의 손을 들어줘서 총수일가 부당이익 제공 금지 규제에도 부당성 입증을 엄격하게 요구할 경우 애초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은 물론 재벌 2~3세들의 편법 승계를 제대로 규제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진의 변론을 맡은 김앤장은 이에 대해 “법 23조2의 입법 취지를 감안해서 ‘부당성’이 ‘공정거래 저해성’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정위가 부당성에 대한 별도의 판단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정위가 별도의 부당성 판단기준을 마련하더라도 대기업은 그 적정성을 다시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국 총수일가 부당이익 제공 금지 규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5월 여야 대선후보들은 공통적으로 재벌 총수일가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최근 재벌의 부당지원 사건에 대해 잇달아 대기업의 손을 들어주며 사회적 흐름에 반하는 보수적 태도를 보여줬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에스케이씨앤씨 부당지원 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 공정위의 제재를 취소하라며 원고인 에스케이의 손을 들어줬다. 또 2015년 1월에는 신세계그룹의 부당지원 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도 공정위 패소 판결을 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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