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면서, 2008년 제기된 삼성 비자금 의혹이 밝혀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1197개는 특검 조사로 확인된 비실명재산이어서, 이자배당에 대해 90%의 세율로 원천징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하면서, “해당 계좌의 인출·해지·전환과정을 전면적으로 다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용진 의원은 31일 “애초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전략기획실 법무팀장)는 이 회장의 차명재산이 비자금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조준웅 특검이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라고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비자금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제2의 삼성 특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차명계좌 현황 자료를 보면 위법 사실이 드러난 1021개 계좌 중에서 개설시기가 이병철 회장이 죽은 1987년 이전인 것은 1개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1988년 이후에 개설됐고, 2000년 이후에 개설된 계좌도 673개(66%)에 달한다. 박용진 의원은 “이병철 회장이 1987년에 사망했는데 어떻게 이후 개설된 계좌를 모두 상속재산으로 단정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도 4조4천억원대 차명재산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삼성생명 차명주식과 관련해 상속재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특검은 2008년 삼성생명 개인주주 지분 51.75% 전체가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1987년부터 차명 상태로 이건희 회장이 상속받은 것으로 인정했다”면서 “이는 1987년 당시 신세계와 씨제이의 지분이 52%여서 차명지분은 아무리 많아도 48%를 넘을 수 없는 것과 배치되는데도, 특검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삼성의 말만 들어 비자금 의혹을 덮었다”고 지적했다.
비자금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김용철 변호사도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비자금”이라면서 “구조조정본부의 지시로 각 계열사가 빼돌린 자금을 모아서 운용한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삼성테크윈이 백화점 여성의류를 구입한 것처럼 허위로 회계처리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으나, 특검은 수사도 하지 않고 증거불충분 판정을 내렸다. 또 특검은 삼성화재가 미지급보험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해서 구조조정본부에 전달했다는 제보가 있었는데도, 단순 횡령사건으로 축소했다.
금융감독당국의 조사에서 비자금 혐의가 드러나면 이번 사건은 차명재산에 대한 세금과 과징금 부과 문제와 함께 배임·횡령 등 형사사건으로도 확대되게 된다. 다만 배임·횡령죄는 시효가 7년이어서 실제 형사처벌이 가능할지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 또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은 비자금으로 주식·부동산을 살 때 현금을 사용했다고 밝혀, 자금추적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삼성은 이에 대해 “이병철 회장 사후에 계좌가 개설된 것은 계좌 명의인인 임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임직원 명의로 계좌를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며 비자금 의혹을 부인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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