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한 걸음 더+] ② ‘패자부활’ 기회의 사회로
실패를 딛고 재기에 나선 중소기업 대표와 자영업자를 만나 그들의 ‘실패론’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넘어진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경제적 환경과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칠전팔기’ 로보프린트 박정규 대표
사업하다 사기 당해 신용불량자로
고층외벽 도색하는 로봇으로 재기
“기술 있어도 신용등급만 따져서야” ‘우여곡절’ 끝에 치킨집 이동훈 대표
경험없이 자영업 시작했다 생고생
폐업-전직 거듭하다 다시 도전
“경험이 노하우…철저한 준비는 필수”
■ “기술이 있어도 자금 지원받지 못하면 재창업 불가능” 홀로 현수막을 만들다 30여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하기까지 로보프린트의 박정규 대표의 ‘재기 이력서’엔 눈물이 배어 있다. 2000년 호프집과 주유소를 운영하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수억원의 빚을 떠안아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 삶을 포기하려고 옥상에 올랐지만, 가족 생각에 차마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다.
현수막 제작 사업을 시작한 건 2004년. 일감을 따내려고 아파트 분양업체를 돌다 밧줄에 매달려 아파트 외벽을 도색하는 도장공을 봤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도색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수십명의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준비 기간 6년, 로봇 상용화 4년, 모두 10년을 투자한 끝에 2014년 건축물에 프린트하듯 도색하는 로봇 ‘아트봇’(ARTBOT)을 개발했다. 현수막을 제작해 얻은 수익은 몽땅 개발비로 썼다. 그러는 동안 이자를 갚지 못해 집에는 빨간 압류 딱지가 세차례나 붙었다. 박 대표는 “기술보증기금에 문의해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대출할 방법이 없냐’고 물었는데 신용불량자라 상담 자체가 안 됐다”며 “재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은행이나 공공기관을 찾아가 보면 신용등급만 본다. 기술이 있어도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면 재창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패한 기업인이 재기하려면 금융지원은 필수다. 지난해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재창업자 151명에게 ‘재창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중복응답)을 물었더니, ‘자금조달 곤란’(58.9%), ‘신용불량으로 인한 금융거래 불가능’(23.2%)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자금 유치가 어려운 박 대표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고 믿어서다. 아트봇은 도색공사 중 추락사고 예방, 일정한 페인트 분사로 환경오염을 최소화해 국내외 특허 10여개를 받았다. 기술을 인정받고 나서야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2010년 로봇 상용화를 위한 재창업 자금을 지원했고, 2012년 한국벤처투자가 운영하는 엔젤투자매칭펀드에서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후 로보프린트는 2016년 약 10억원, 지난해 2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앞으로 자동차·조선 도색 로봇, 초기 화재 진압 로봇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미국 법인을 설립해 자주 출장길에 오르는 박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털은 사업 경험이 있거나 실패를 당해본 재창업자에게 기회를 더 준다”고 말했다.
제3자 연대보증이나 창업자 연대보증은 그동안 창업자뿐 아니라 가족의 재산까지 탕진하게 해 ‘한번 실패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게 했다. 최근 몇년 사이 정부 정책에 따라 정책금융기관에선 이런 관행이 사라졌다. 하지만 담보 위주 대출 관행에 젖어 있는 민간금융기관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재도전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연대보증제도 폐지가 민간까지 확대되고, 정부 지원기업 가운데 자격을 갖춘 곳에는 폐업으로 밀린 세금에 대한 유예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실패가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는 재도전뿐만 아니라 전문인력을 창업으로 이끄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 “철저한 시장조사, 준비 기간은 필수” “어서 오세요~ 바른치킨입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치킨집에서 만난 이동훈 대표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하지만 어엿한 치킨집 사장이 되기까지 이 대표는 여러 차례 도산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2012년 결혼 뒤 경기도 평택에 아웃소싱 회사를 차렸다가 접었다. 파견 간 직원들이 돈을 조금 더 받으려고 파견회사와 직접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어 회사 사장님에서 치킨집 사장으로 변신했다. 부모가 퇴직금을 털어 연 치킨집에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 상권 파악이나 차별화된 메뉴 개발 없이 무턱대고 뛰어드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직원 월급조차 주기 힘든 상황에 처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인건비를 충당해야 했다. 그는 “가족들이 남은 식재료나 치킨으로 식사를 할 만큼 생계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이 대표처럼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특별한 기술이나 넉넉한 자본이 없어 진입 장벽이 낮은 음식업이나 소매업종에 몰린다. 국세청의 ‘2016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창업한 개인사업자는 106만8천명이고,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73만9천명이다. 하루 평균 3천명이 사업을 시작하는 사이 다른 쪽에서는 2천명씩 문을 닫는 셈이다. 대부분 서비스업, 부동산·임대업, 소매업, 음식업 등이다.
이 대표는 사업을 성공시키고자 온힘을 다했다. 2013년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의 수업을 듣고 가게 운영 노하우와 조리 교육 등을 배웠다. 치킨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아기를 돌보는 아내까지 일손을 보탰다. 하지만 위기가 또 찾아왔다.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치킨집 사장이 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배달의 민족’을 통해 인연을 맺은 지인이 한 프랜차이즈 치킨업체 직영점의 운영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시험삼아 3개월간 운영해봤다. 가능성이 보여 뛰어들었다. 실패 경험에서 얻은 교훈으로 주변 상권을 살폈다. 배달 중심 판매로 인건비를 줄였고, 치킨에만 집중해 다른 자재비를 아꼈다. 평일 50만~60만원, 주말 100만~120만원 수준이던 매출이 두배로 뛰었다.
그는 “주변을 보면, 가게를 열 때 필요한 추가 비용(인테리어·인건비·물류비 등)을 생각하지 못하고 기본 운영금만 갖고 뛰어들어 빚만 남기고 폐업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준비 기간은 필수”라고 조언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업하다 사기 당해 신용불량자로
고층외벽 도색하는 로봇으로 재기
“기술 있어도 신용등급만 따져서야” ‘우여곡절’ 끝에 치킨집 이동훈 대표
경험없이 자영업 시작했다 생고생
폐업-전직 거듭하다 다시 도전
“경험이 노하우…철저한 준비는 필수”
박정규 로보프린트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2월 대구시 동구의 옥상에서 직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로보프린트 제공
이동훈 대표(가운데)와 직원 남승범(왼쪽)씨, 김재규씨가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송파구 치킨 매장에서 어깨를 맞대며 웃음짓고 있다. 이동훈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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