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5일 2심 재판에서 기존 5년 실형 선고를 뒤집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핵심 부분은 ‘경영권 승계작업’의 인정 여부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란 목표 위해 개별현안이 추진돼 왔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원심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미래전략실 주도 하에 지속적으로 추진했다”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승계작업을 서둘러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중략)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승계작업을 최대한 진행하기로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며 경영권 승계작업을 인정했다.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항소심은 승계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도 존재할 수 없고, 제3자 뇌물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정한 청탁이라는 뼈대 자체를 무너뜨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를 대폭 줄었고, 1심서 유죄로 판결된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출연이나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 후원 등이 무죄로 바뀌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처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엘리엇 등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이 성공할 경우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던 건 인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별 현안이 결과적으로 그런(지배력 확보) 효과가 확인되는 것이고, 위 개별 현안들을 통해 ‘승계 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한 개별 작업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종합한 ‘승계작업’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판단은 항소심까지 유죄가 나온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판결과도 배치된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합병 후 법인에 대한 주식 소유비율이 높아지게 됨과 동시에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는 구조”라고 경영권 승계작업임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어 “1990년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부터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이 모두 이재용 부회장 3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사실”이라며 “삼성물산 합볍 건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문형표 전 장관 등이 항소심까지 유죄가 선고된 상황에서, 승계작업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사상 최악의 ‘재벌 봐주기’ 판결로 기록될 것이며, 이는 ‘정치권력 위에 재벌’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