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평양행 전세기를 운항한 이상준 이스타항공 기장이 북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이스타항공 제공
“제주에서 백두산까지 비행. 빨리 통일이 돼 그런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31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참여한 공연단을 태운 전세기를 운항한 이상준(47) 이스타항공 기장의 소회다. ‘한반도의 봄’을 실어나른 그를 지난 3일 만났다.
20년 차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이 기장의 평양 방문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5년 8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광복 70주년 8·15 남북공동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할 때도 전세기 수송을 맡았었다. 항공업계쪽에선 이스타항공이 대형 항공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면에서 저렴하고, 북한 지역 운항 경험도 있어 전세기 운항을 계속 따낸 것으로 보고 있다.
“남북 화합 모드가 무르익었다는 소식이 들리던 차에 회사쪽에서 (전세기 비행) 제안을 받았어요. 경험이 있다보니, 부담은 덜했지만 기대감은 컸죠. 쉬는 날이었는데도 비행 가고 싶어 통일부에서 교육도 받았어요. 역사적인 순간에 작은 힘이라도 더할 수 있어서 감사했죠.”
이 기장이 이끈 평양행 전세기는 3월31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이륙 후 서해로 빠져나간 뒤, ㄷ자 형태로 선회해 북쪽 지역으로 이동하는 ‘서해직항로’를 이용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과 북이 합의한 임시항로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북한 조문단이 이용하기도 했다. 이 기장은 “만약 김포공항에서 평양까지 ‘직선’ 항로를 이용하면, 20여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고 말했다.
30여분이 지난 11시5분께 38선 인근에 도착했다. “평양 컨트롤 이스타젯”(Pyongyang Control Eastarjet) 북한 평양 관제소에서 교신이 왔다.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비행기는 평양 관제소에서 통제한다. 북한 쪽에서 관제 구역 내 주파수와 비행고도를 안내했다. 이어 “6200미터 고도에서 비행을 유지하면서 관제 구역(평양)에 진입하라”는 허가가 떨어졌다.
“2015년 8월에 갔을 때는 평양 시내가 잘 보였어요. 대동강부터 평양 시내에 있는 유명한 조형물들이 한눈에 들어왔죠. 조형물이 워낙 크기도 하고 가시거리가 좋았어요. 이번에도 기대했는데…”.
평양 인근 영공에 들어섰지만, 시내는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이 기장은 안내 방송 대신 안전하고 부드럽게 착륙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비행기 바퀴가 평양 땅에 닿는 순간, 통일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땅에 닿길 바라는 마음에 착륙에 신경을 썼어요.”
전세기는 11시29분께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을 떠난지 채 1시간도 안 걸렸다. 그제야 제복을 입은 북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연단은 호명되는 순서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기내에서 하는 말이 기장실까지 들렸다. “누군가 ‘조용필 선생님 나오세요’라고 해서 뒤를 돌아봤어요. 뒷 모습만 봤죠.” (웃음)
공연단이 내린 뒤, 이 기장도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인근에서 직원들과 한 시간쯤 머물렀다. 건물 외부에서 본 순안공항은 예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순안공항은 2015년 7월 준공된 신축건물이다. 입국수속장에는 면세점과 위생실 등이 있고, 입국 환영장에는 식료품 상점, 커피, 책 판매대 등이 운영되고 있었다.
북한 직원들은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공항에서 일하는 북한 직원에게 사진 촬영을 제안해봤지만 “근무시간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2015년에도 분위기는 좋았어요. 이희호 여사가 남북 평화를 위해 열심히 하는 걸 북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당시에도 우호적인 분위기로 맞아줬고, 이번에는 남북 관계가 더 좋은 상황에서 갔기 때문에 더 따뜻하게 환대해줬어요.”
이 기장과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보안상의 문제 등으로 더 머물 수는 없었다. 그는 돌아오는 빈 비행기에서 북쪽으로 가는 정기편 운항을 꿈꿨다.
“북한 영공이 개방돼 국적기가 북한을 통해 갈 수 있다면, 연료비도 절약되고, 비행시간 거리도 단축되면서 경제적 효과가 클 거예요. 같은 마음을 모으면, 막연히 생각하는 통일의 시기가 훨씬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요?”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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