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 과정에서 양국이 주고받은 문서 등 협상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에 이어 서울고등법원도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정부가 상고를 포기하고 법원 판결을 따를지 주목된다.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부장판사 김주현)는 남희섭 변리사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남 변리사는 “한-미 에프티에이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 과정에서 양쪽 정부의 입장자료, 대응정책과 쟁점 목록, 잔여 쟁점에 대한 일괄협상(패키지딜) 구성표 등을 담은 문서를 공개하라”며 2015년 4월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산업부가 거부하자 그 해 7월 소송을 냈다.
산업부는 정보공개법 9조(비공개 대상 정보)에 따라 남 변리사가 공개를 청구한 정보들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방침을 고수해왔다. 산업부는 2심 재판 과정에서도 일괄협상 구성표 등이 공개된다면 우리 정부가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당시 취한 기본 입장과 협상 전략 등이 공표될 가능성이 커서 향후 추진될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교섭 정보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고, 협상 자료 공개로 국제적 신뢰관계 유지라는 국익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비공개로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국민의 이익보다 크다는 점이 명백히 인정되어야 한다”며 정부의 정보공개 거부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더구나 이 사건 정보에 대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스스로 합의하여 설정한 비공개 기간(협정 발효 뒤 3년)이 이미 지나간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소송을 제기한 남희섭 변리사는 “정보공개를 청구한 뒤로 3년 가까이 소송이 진행됐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법원 결정을 받아들이고 협상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패소한 판결에 항소를 자제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법률 대리인을 통해 판결문을 받아본 뒤 내용을 분석하고 대응 방침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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