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가운데 재계와 정부가 국내 처음으로 기업 사회공헌에 대한 ‘평가잣대’를 만드는 작업에 발벗고 나섰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안에 객관적인 기업별 ‘사회공헌 성적표’가 만들어지고, 사회공헌 실적에 대한 ‘거품 시비’도 상당부분 사라질 전망이다. 전경련-비영리학회 공동개발키로
지원 필요한 분야 실태조사도 함께
복지부도 지표 마련 협력틀 짜기로
정치자금 등 합산 ‘부풀리기’줄 듯 2일 재계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 현대차, 에스케이 등 대기업들은 최근 기업 사회공헌에 대한 평가지표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비영리학회(학회장 박태규 연세대 교수)와 공동연구로 추진되는 이번 작업에는 엘지, 케이티, 포스코, 한화, 씨제이, 교보생명, 이랜드, 우림건설 등 국내 대표적인 사회공헌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연구기간은 6개월 정도인데, 중간에 국제세미나를 열어 각계 의견도 수렴한다. 평가지표 개발은 기업의 사회공헌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연구팀의 양용희 교수(호서대)는 “국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표준화 작업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으나, 국내는 아직 초보단계”라며, “새로 사회공헌을 하려는 기업들에게 가이드라인 구실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의 대표적 평가지표로는 미국 다우존스의 ‘DJGSI 지수’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FTSE 4Good 지수’ 등이 꼽힌다. 이들은 기업의 재무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 환경적 가치들을 종합평가한다. 또 상당수 선진국 기업들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도하는 ‘GRI 보고서’ 작성 기준 등을 활용해서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낸다.
정대순 전경련 사회공헌팀장은 “평가지표는 기업들이 자기평가를 통해 사회공헌을 내실화하는 데 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단순히 관련 지출이 많다고 해서 점수가 높은 게 아니라 기업 역량에 맞게 열심히 활동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평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또 사회공헌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복지 분야를 소년·소녀 가장이나 장애, 결식아동 등 40여개로 세분해서 실태조사도 함께 실시한다. 이는 지원이 특정 분야에만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삼성사회봉사단의 황정은 차장은 “정부의 사회복지 지원만으로는 부족한 터에 기업 지원이 분야별로 골고루 이뤄진다면 지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최근 기업 사회공헌 활성화를 위해 ‘평가지표’를 개발하기로 하고, 중앙대 김교성 교수팀과 연구용역 계약을 맺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민관 사회공헌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기업 지원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사회공헌 우수기업들을 시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기업 쪽에서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기업 관계자는 “정부 지원은 좋지만, 평가지표가 기업들을 간섭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결국 규제로 비춰질 수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 평가지표 개발은 그동안 기업들이 사회공헌 실적 발표 때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심지어 일부 부적절한 내용까지 포함시킨 데 따른 혼선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곽대석 ㈜씨제이 사회공헌팀장은 “매년 기업별 사회공헌 지출 규모가 소개되지만 솔직히 실무자들도 반신반의한다”고 털어놨다. 지금도 일부 기업은 사회공헌 지출에 정치자금이나 경제단체 회비까지 포함된 기부금 일체를 그냥 합산하는 실정이다. 또 준프로 경기종목 지원비와 거액의 선수 스카웃비, 산하 교육기관의 운영비 등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재단활동과 관련해서도 한쪽에서는 순수 지원비만 포함시키는 반면, 다른 쪽은 직원급료 등 경상비까지 합산한다. 전경련 조사에서 국내 대기업의 매출액 대비 사회공헌 지출 비율이 평균 0.37%로 일본의 세배 이상으로 높게 나온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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