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새경제규칙포럼(준) 공동주관으로 열린 ‘2018 장하준 교수 초청 포럼 : 세계 경제 대전환과 한국경제 - 복지국가와 산업정책, 경제민주화’에서 장하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복지는 사회서비스를 공동구매하는 것”이라며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싣는 발언이 정치권에서도 쏟아졌다.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8 장하준 교수 초청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증세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며 “채무를 늘려서라도 국가가 먼저 복지서비스를 확대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점차 증세하자고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고 말했다. 함께 토론에 나선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복지서비스 시행에 있어 비혼 가정 자녀 등이 소외되는 이른바 ‘정상가족’ 중심 방식도 개선해 보장성을 확실히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 정치인들의 발언은 기존 신자유 패러다임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데 대한 공감에서 나왔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이미 더 논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라며 재정 지출 증대를 통한 복지제도 확대와 함께 제조업 혁신과 이를 추동할 산업정책 부활을 강력히 주장했다. “훨씬 더 과감해지지 않으면 경제성장과 삶의 질 그 어떤 것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장 교수의 경고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진보진영에서 특히 산업정책이 군부독재의 산물이라고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된 경제성장과 혁신을 위해 산업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장 교수가 든 비유가 재미있다. “규제를 완화해서 제일 빨리 뛰는 놈이 이기고, 그 기록으로 성공을 재는 ‘100미터 달리기’식의 성장은 이제 끝났다. 이제 성장과 혁신은 축구다. 때로는 한 사람이 골도 넣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협동하는 팀 경기로 봐야 한다.” 한 사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닌 기업, 노동자, 지역사회, 연구자, 정부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사회를 이끌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이 아니라 복지지출 확대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판 갈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2018 장하준 교수 초청 포럼’ 토론 모습. 왼쪽부터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조원희 국민대 교수(사회), 장 교수,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독일의 ‘산업 4.0’과 덴마크의 신재생에너지
복지재정 확대와 함께 산업정책에도 과감한 구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토론자들은 깊은 공감을 보이며 새로운 사회 구상에 열을 올렸다. 이혜경 여성재단 이사장은 “신자유주의 실패에는 동감하지만 구체적 대안을 찾는 데는 이견이 크다”며 복지 확대가 세금 낭비라는 소모적 논쟁을 떠나 구체적 방법을 찾아가는 데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좌장을 맡은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도 “파괴적인 금융정책 중심이 아니라 제조업 혁신을 통한 지속가능 성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보편적 복지 확대와 산업정책 재구상을 통해 위기에 빠진 경남의 경제 해법을 찾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이 이끌며 ‘완전고용도시’를 자랑하던 거제시가 2017년에는 6.6%의 전국 최고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경남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김 지사는 “독일의 ‘산업4.0’을 본받아 기술 혁신과 스마트공장·노동자 재교육으로 기술 혁신이 매출 증대와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독일의 산업4.0은 디지털기술을 생산공정에 접목한 제조업 혁신 정책을 말한다. 김 지사는 스마트공장으로 전환한 경상남도 소재 기업 중 일부는 오히려 20% 가까이 고용을 늘릴 수 있었다며, “산업정책 구상에 노사정, 지역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모델을 도입하는 포괄적 산업정책 구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덴마크의 롤란드 섬 사례 등에서 배워 근시안적 고부가가치가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근본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며 장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덴마크는 1980년대 경제의 버팀목이던 조선업이 휘청거리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조선업에서 풍력발전 등으로 경제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신재생에너지의 선두주자가 된 덴마크는 지속가능성장의 대명사로 우뚝 섰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도 장 교수는 복지 확대가 우선임을 분명히 했다. “복지를 확대해 사회 변화가 내 삶에도 도움이 된다는 체감을 하도록 해야 정책 변화에 대한 대중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한국에는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다”며 “이 특수성을 고려하고 이들에게 충분한 사회안전망을 보장하는 세심한 정책 구상을 해야 추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새경제규칙포럼(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공동주관으로 열렸다. 포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박영선·박주민·진선미·김병관 의원,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 곽상욱 경기 오산시장, 정승일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차성수 새경제규칙포럼(준) 기획단장, 송재호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김민석 민주연구원 원장,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김용기 아주대학교 교수,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 등 정재계 및 학계 내빈이 참석했으며, 400명 가까운 청중이 참가해 열띤 관심을 나타냈다.
※관련 기사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54729.html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