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농민연대 관계자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한-미 FTA 전면 재협상 및 ISD 폐기를 요구하는 100인 108배를 하고 있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이란 다야니 투자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 ‘엔텍합’이 2015년 청구한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사건에서 최근 패소한 우리 정부가 중재판정문 공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국민 세금을 해외 투자자본에 막대한 배상금으로 지불하게 된 사건인데다 ‘ISDS 칼날’의 실체적 위협이 현실로 드러난만큼 국회·시민사회가 이 판정문 정보를 토대로 ‘ISDS 폐기’ 등 재논의에 나설 수 있도록 판정문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런던의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지난 6월 초, 엔텍합이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당시(2010년) 채권단과 인수계약을 맺었다가 계약을 해지당하고 계약금까지 몰수당하자 2015년에 우리 정부를 상대로 청구한 ISDS 사건에서 6800만 달러(약 730억원)를 배상하라고 ‘한국 패소’ 판정을 내렸다. 판정 직후 다야니의 소송대리인인 프랑스 로펌 ‘드랭 앤 가라비’는 180여쪽에 이르는 중재판정문 중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7월 초 글로벌중재리뷰(GAR)라는 매체를 통해 공개된 내용을 보면, 국제 민간인 법률가 3명으로 구성된 중재재판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권단의 계약취소 의사 결정 과정에 불공정하게 개입했으며, 한국 정부가 캠코를 앞세워 채권단 결정을 간접적으로 지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패소 판정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는 중재판정문을 공개하라며 금융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서를 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중재판정에 대한 취소소송(일종의 재심) 제기를 검토중”이라는 등의 이유로 판정문 공개를 1차 거부했다. 그러자 민변은 이의신청을 냈고, 지난달 17일 금융위는 “이달 3일 취소소송을 영국고등법원에 제기한 상태인데다 상대방인 다야니 쪽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며 판정문 공개를 재차 거부했다.
송기호 변호사(민변)는 “글로벌중재리뷰 보도에 비춰보면, 이번 엔텍합 사건 패소 논리는 사적 당사자간 인수·매각거래에 한국 정부가 공권력을 남용해 간접 개입해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1998년)상의 공정·공평대우 보장 및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논리라면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건이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2012년에 론스타펀드가 제기한 ISDS건도 우리 정부가 과연 방어해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론스타 건은 올해 최종 판정이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송 변호사는 또 “이번 패소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다른 ISDS 청구사건 판정에 선례 혹은 빌미로 작용할 수 있고 ‘ISDS 위험’이 명백해진 것”이라며 “정부는 판정문을 국민들에게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정문 내용을 근거로 ‘ISDS 정책’ 재검토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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