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여부 등을 협의하는 동반성장위원회 회의 모습. 동반성장위원회 제공
지난 5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하 생계형 적합업종법)이 시행되기도 전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보호 대상인 소상공인 쪽에서 난항 끝에 제정된 특별법이 자칫 ‘빚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2일 소상공인 관련 단체의 의견을 종합하면, 특별법 제정에 따라 오는 12월 13일부터 시행 예정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까다로운 신청 절차와 지정 요건 등으로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현행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보다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자율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운영하는 현행 적합업종 제도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는 있으나 신청 접수에서 지정 공고까지 동반위가 일괄처리한다. 반면 특별법에서는 생계형 적합업종의 경우 동반위에 신청하면 위원회 협의·검토를 거쳐 중소벤처기업부에 추천을 하고, 이를 다시 중기부장관 산하의 별도 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해 다수결로 통과시키면 중기부 장관이 지정·공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신청부터 지정 절차까지 단계가 복잡하고, 특히 ‘동반위 추천’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사실상 적합업종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이동주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특별법에 명시된 동반위의 추천권 때문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대상의 범위가 동반위에서 이미 적합업종으로 지정했거나 논의 중인 업종 또는 품목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기업 대표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동반위의 위원 구성상 생계형 업종 신청을 하더라도 추천에 합의를 해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점적 추천권을 가진 동반위가 요건 미비 등을 이유로 소상공인의 신청을 무시하거나 시간끌기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시행해온 현행 적합업종도 신청건수 대비 처리 안건의 비율이 30%가량에 불과하다. 반기홍 전국학용문구협동조합 이사장은 “2016년 8월에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초등학생용 학용품 소매도 신청을 접수하고 합의 대상 대기업의 의견 청취 등에 3년 이상이 걸렸다”며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생존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에게는 신속한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실효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가 법적 기한(최장 6년)이 만료된 47개 업종·품목이 특별법 시행 준비 기간 동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들 업종·품목은 지난해 시한이 순차적으로 만료돼 동반위가 올해 상반기까지만 임시로 만료기간을 연장해놓은 상태인데, 중기부가 특별법의 하위 법령을 준비하는 기간과 새로운 제도에 따른 지정 심사기간(3개월)을 고려하면 최소 9개월 간은 대기업의 시장 침탈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 이호연 중기부 상생협력국장은 “적합업종 기한이 만료되더라도 특별법 시행 뒤 1년 안에 신청하면 우선 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생계형 적합업종의 신규 신청에서부터 심의·지정 절차와 관련해서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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