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경남 사천시 남해고속도로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탄 베엠베(BMW) 730Ld의 잔해. 경남지방경찰청 제공.
리콜 대상이 아닌 베엠베(BMW) 차량에서 주행 중 화재가 발생했다. 리콜 대상이 아닌 베엠베 차량의 화재는 10건으로 늘었다.
국토교통부와 소방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15일 새벽 4시17분께 전북 임실군 신덕면 오궁리 하촌마을 부근 도로에서 운행중이던 베엠베 X1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차량이 전소해 약 1700만원 가량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 차량을 운전한 운전자 ㄱ(28)씨는 “차량이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어 정차한 뒤 보닛을 열자 연기가 새어 나왔다”고 경찰과 소방당국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X1 차종은 디젤 차량이지만, 화재가 발생한 차량은 2012년 4월 생산돼 리콜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베엠베는 잦은 주행 중 화재사고의 원인으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인 이지아르(EGR) 모듈의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해당 부품이 장착된 베엠베 차량 10만6천대에 대한 리콜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잇달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회사 쪽이 지목한 화재원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올해 들어 발생한 베엠베 차량의 화재 40건 중 이날 임실에서 발생한 사고까지 포함해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의 화재는 10건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차량 화재의 경우 차량이 전소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워보인다”고 설명했다. 베엠베코리아 쪽은 “사고 차량은 2012년 전손처리 후 부활한 차량으로 대부분 폐차 직전 껍데기만 바꾼 차량”이라며 “결함과 무관하게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14일까지 긴급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해 이날부터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지만,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 발생하는 화재에는 손 쓸 방도가 없는 상태다. 리콜 대상 차량 중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운행정지 명령을 어기고 주행하다 화재사고가 나면 적극 고발조처하는 등의 방침을 내놨지만, 이번처럼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막기 어렵다.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이 정부 대책에서 빠져 있는 것은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부품 결함으로 화재 원인을 특정한 베엠베 탓이 크지만, 베엠베 주장을 수용해 리콜 계획을 승인한 국토부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엠베가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부품 결함 문제가 축소됐거나 잘못 짚은 것이라면 20일부터 진행되는 리콜은 실효성을 잃게 된다. 국토부는 올해 안에 화재 원인 조사를 끝내고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지만, 베엠베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과 관련된 기술 자료 등을 국토부에 제출하지 않으면 서너달 만에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리콜 대상 차량 중 실제 운행정지 명령이 내려질 차량은 1만대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14일 자정까지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차량은 전체 리콜대상 차량 10만6317대의 18.8%인 1만9276대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 국토부가 안전진단 미실시 차량에 대한 운행정지 명령을 예고한 이후 안전진단 건수와 예약이 모두 늘었다. 13일 안전진단 건수는 6883대였으나 14일 7970대로 늘었고, 예약 접수 후 진단대기 차량의 수도 4818대에서 8122대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운행정지 명령 결정이 내려진 이후 리콜 대상 베엠베 차주들이 대거 몰린 영향으로 국토부는 해석했다.
정부는 애초 15일부터 운행정지 명령 행정절차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이날이 공휴일인 관계로 16일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안전진단 미실시 차량에 대한 운행정지 협조요청 공문과 함께 대상 차량의 현황 정보를 전달할 예정이다. 15일에도 전날 만큼 안전진단이 이뤄진다면 실제 운행정지 명령 대상으로 통보될 차량은 1만대 안팎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허승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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