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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네이버·넥슨 이어 SG…IT업계 이유있는 ‘노조 열풍’

등록 2018-09-05 21:10수정 2018-09-05 21:33

일과 삶 균형 중시하는 젊은층
악명높은 장시간 노동에 반기
노조 만들어 ‘SG 길드’라 애칭
“수천억 이익내도 임금 제자리”
비상식의 벽을 레이드합시다”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제공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제공
‘오징어배’ ‘등대’.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판교의 정보기술(IT)·게임업계를 빗댄 단어들이다.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이들 업계에 최근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회사의 고속성장에도 ‘업종 특성’을 이유로 나아지지 않는 노동환경의 개선 요구와 직장 내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는 점이 노조 설립의 배경으로 꼽힌다.

5일 중견 게임업체인 스마일게이트의 노동자 100여명은 노동조합 설립에 나섰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산하에 결성된 스마일게이트지회는 이날 “게임산업 노동자의 ‘노동조합 할 권리’를 스마일게이트가 이어갑니다”라는 제목의 노조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했다. 스마일게이트지회는 선언문을 통해, “회사는 매년 엄청난 매출을 내고 있으나 포괄임금제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무리한 일정을 지켜야만 했기에 유연근무제는 전혀 유연하지 않았다”며 “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이어서 불안에 떨었고, 정보는 차단되고 의사결정은 불투명한데 책임과 과로의 위험은 언제나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고 출범 이유를 밝혔다.

지난 4월에는 네이버, 이달 3일에는 넥슨에도 노조가 설립된 바 있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그치는 국내 현실에다 업계에서 ‘드문’ 노조 설립인 만큼, 해당 노조들은 문턱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지회는 게임업계의 특성을 반영해 애칭을 ‘에스지(SG·스마일게이트의 영문 약자) 길드’로 정했고, 조합원들에게 “노조와 함께 비상식의 벽을 레이드합시다”라고 적었다. 게임 용어인 ‘레이드’는 다수의 게이머들이 힘을 합쳐 능력치 높은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네이버지회도 지회 ‘간부’라는 말 대신 ‘스태프’라는 용어를 쓴다. 넥슨지회는 설립 사흘 만에 조합원이 600명을 넘겼고, 스마일게이트지회 역시 이날 오전에만 100명 넘게 가입했다.

이처럼 정보기술·게임업계에 노조 설립이 이어지는 것은 ‘워라밸’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장시간 노동 등을 개선하려는 직원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들은 고속성장으로 조 단위 매출과 수천억원대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작용했다.

스마일게이트 창업자 권혁빈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포브스>가 꼽은 ‘한국의 부호’에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누르고 4위에 올랐고, 회사는 매출 절반 남짓에 해당하는 4천억원 가까이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으로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까지 받았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지난해 고용부가 게임업체 8곳에 대해 근로감독한 결과 6곳이 법정 노동시간을 위반했고, 회사마다 수억원대 임금체불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민주적 제도’는 없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 노조가 생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 역시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회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지난 7월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유연근로제 도입을 추진했는데,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었던 배수찬 넥슨지회장과 근로자대표였던 차상준 스마일게이트지회장 모두 “이때 노조를 결성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근로자위원과 근로자대표 모두 노동조건 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지만 법적 권한이 노조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차 지회장은 “근로자대표는 회사가 제시한 문서에 서명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근로자대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정보기술·게임업계의 신생 노조들은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강조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설립 때부터 네이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네이버지회는 회사와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지명하는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하고 있고, 콜센터를 운영하는 계열사 노동자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감정노동자 보호를 교섭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넥슨지회와 스마일게이트지회 역시 “게이머와 함께하는”이라는 슬로건을 강조한다. 차 지회장은 “게임사들이 재미와 돈벌이 사이의 균형을 잡지 못해 게이머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다”며 “게이머이자 개발자로서, 유저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노조가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생 노조들의 포괄임금제 폐지, 장시간 노동 근절, 조직문화 개선 등의 요구가 이 회사들만의 문제가 아닌데다 경쟁보다는 ‘함께 성장하는’ 의식이 강하고, 이직도 잦은 업계 특성으로 볼 때 정보통신·게임업계의 노조 설립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규모있는 정보기술 대기업과 게임기업에서도 노조 출범을 앞두고 있는가 하면, 관련 상급 노조에도 설립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설립된 노조들이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산별 노조’로 가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화섬노조 관계자는 “만약 노동자들이 기업별 노조를 설립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업을 넘나들며 정보기술·게임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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