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보적 북한 비핵화에 맞춰져온 남북 정상회담이 이번 평양회담에서는 남북 경제·산업협력 분야 쪽으로 확대되면서 평양에 동행하는 재벌대기업 회장 등 ‘경제인 17명’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남북경협 가능성과 한계를 ‘북한 현장’에서 체험할 것으로 보인다. 고민과 긴장이 동시에 교차하는 분위기가 확연한 경제단체 및 기업 쪽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라는 현실적 제약도 있어 투자 등 개별 비즈니스를 들고 가긴 어렵지만 북한의 최고 지도자 및 경제 각료와 직접 경제·산업협력에 대한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이자 기회”라며 남북한 사업과 평화에 대한 기대를 자못 내비쳤다.
이번 방북 경제인 특별수행원의 공식일정은 첫날 오후에 북한 부총리와의 면담에 이어 둘째날 북한 산업시설 시찰로 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17일 <한겨레>가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 동행하는 17개 재벌대기업 및 경제단체 쪽을 취재해보니, 대부분 “평양에서 가서 무엇을 말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방문을 하루 앞두고 있지만 남북 경제·산업협력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이 평양에 가는 대한상공회의소 쪽은 “경제인들이 북한쪽과 실질적인 남북경협 관련 협의를 할 기회는 없을 것같다. 박 회장도 다른 준비 없이 남북경협 관련 공부만 하고 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한겨레 사진
삼성·엘지(LG)·에스케이(SK) 쪽은 “특별히 미리 준비한 건 없다. 뭔가 투자 등 계획을 꺼내놓고 합의하는 자리가 아니다. 일단 평양에 가서 그쪽 담당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눠본 뒤에 돌아와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평양에 가서 북한에서 어떤 요청을 하는지 들어보고나서 진행해 볼만한지 여부를 돌아와 검토하게 될 것같다”며 “개별 사업 아이템을 논의하는 건 아니고, 북한이 핵문제를 잘 풀면 경제영역에서도 협력 등 액션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의미가 있는 것같다”고 ‘경제인 특별수행’의 정세를 분석했다. 이처럼 방북하는 재벌기업들은 ‘개성공단 전면중단’ 같은 학습효과에 따라 북한지역 투자·협력이 경제논리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만큼 ‘사업 리스크’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 역력했다.
최정우 회장이 이번 평양회담에 동행하는 포스코는 남북경협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 8월 그룹 내 대북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뒤 북한 자원개발과 인프라 구축, 제철소 재건 등 사업 구상에 상당부분 진척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북한의 지하자원을 들여와 쓰는데서 나아가 철도·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 참여해 장기적으로 한반도 철강산업 재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단기적으로 철강사업과 그룹사 사업에 활용되는 자원의 사용과 개발에 중점을 두며 장기적으로는 북한 인프라 구축과 철강산업 재건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현대그룹 쪽은 “현정은 회장이 이번 방북 때 기회가 생기면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요청하겠지만, 그것도 지금은 대북 제제 등 전제 조건들이 많은 상황인데다 평양 일정이 환담·시찰 등 공동행사들이라서 개별 기업들이 따로 뭘 얘기할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종갑 사장이 동행하는 한국전력은 김 사장이 이날 아침 간부회의에서 “북한의 전력 사정과 현황을 살펴볼 기회 정도라고 생각하고 다녀오겠다. 남북간 전력협력 안을 따로 준비해 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함께 방북하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경협에서 산업은행은 경협의 기반을 닦는 일부터 구체적인 여러 협력사업들까지 할 일이 굉장히 폭넓고 많다. 기초작업을 찬찬히 하고 있다”며 “초기 위험도 워낙 크기 때문에 한 두개 금융기관이 북한에 들어가서는 하기 어렵고, 외국 금융기구 등까지 국제적으로 합심해 큰 그림을 그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의 남북 경협이 정부 주도 및 통일의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투자’ 성격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남북 산업협력 구상은 ‘상호 공동번영’이다. 민간 기업이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판단과 책임 아래 주도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라며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수송기계분야 등에서 제조업이 회복·성장하고 있어 민간 주도의 협력사업 모델이 점차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대북 경제제재 국면 속에서도 북한과 남한의 이해와 관심이 합치되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분야 협력이 우선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반도 기후변화 대응 및 인도적 지원사업 성격으로 신재생 협력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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