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해 운전자의 개념을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넓히는 등 대대적인 규제 정비에 나선다. 자율주행차의 발전 단계에 맞춰 7개 정부 부처가 총 30건의 규제를 선제적으로 대폭 손질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자율주행차 분야 선제적 규제혁파 로드맵’을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이 총리는 “자율주행차의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걸림돌이 될 규제들을 미리 정비하고자 한다”며 “이번 규제혁파는 현재의 장애물이 아니라 미래의 장애물을 미리 걷어내는 선제적 규제혁파로 오늘 처음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확정한 자율주행차 분야 규제혁파 로드맵은 국토교통부·경찰청·현대자동차 등 22개 기관이 참여해 마련한 것으로, 단기과제 15건·중기과제 10건·장기과제 5건 등 총 30건이 담겼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관리법, 도로법, 도로교통법, 형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등 수십여개의 법령과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과제부터 우선 추진하고,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부산·세종)에서 자율주행차 실증사업을 벌인 뒤 그 결과를 반영해 2020년께 로드맵을 재설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먼저 시스템이 운전하되 필요한 때 사람이 개입하는 ‘조건부 자율주행’ 단계에 맞춰, 내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운전자’ 개념을 재정의하고 각종 의무와 책임주체를 설정하기로 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사람에 의한 운전을 기본 전제로 하고 안전운전의무와 난폭운전금지 등 각종 의무사항을 규정하지만 이를 사람 대신 시스템이 주행하는 상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차에 맞는 제작·정비·검사 규정, 자율주행 시스템 관리 의무가 신설되며, 자율주행 중 교통사고가 났을 때 형사책임·손해배상 기준과 보험 규정도 마련한다. 아울러 자율주행차가 사전동의 없이 보행자의 영상정보 수집·활용을 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도 추진한다.
2021~2025년에는 운전자가 시스템의 개입 요청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자율주행이 이뤄지는 ‘고도 자율주행’에 대비한다. 현재는 운전 중 휴대전화 등 영상기기 사용이 금지돼 있고, 두 대 이상의 자동차가 줄지어 통행하는 ‘군집주행’을 금지하지만, 고도 자율주행 단계가 되면 이를 허용하도록 도로교통법 개정을 추진한다. 자율주행 화물차의 군집주행이 실제로 이뤄지면 물류 효율성이 커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2026년 이후에는 모든 구간과 상황에서 자율주행이 이뤄지는 ‘완전자율주행’에 대비한다. 완전자율주행 차량이 상용화되면, 이 차종을 운전할 수 있는 간소 면허 또는 조건부 면허를 신설하고, 과로·질병 등 운전 결격사유와 금지 사유를 완화하는 특례를 신설한다. 또 운전석의 위치를 고정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차량 내부 모습이 혁신적으로 변할 수 있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율주행차는 연평균 41%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고 단계적인 상용화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첫 규제혁파 로드맵이 마련됐다”며 “내년에는 드론과 수소차, 전기차, 에너지신산업 분야의 로드맵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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