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분리’ 정책이 안전 위협
운영·보수 코레일-건설은 시설공단
권한·책임 이원화로 책임 공방만
‘공공기관 효율화’ 10년의 대가
이윤 추구 정책에 30% 이상 외주화
운행 선로 늘었지만 예산·인력 줄어
철도정책 거버넌스 구조 무너져
국토부·코레일·철도노조 갈등 심화
공공성 살릴 총괄적 정책구조 시급
운영·보수 코레일-건설은 시설공단
권한·책임 이원화로 책임 공방만
‘공공기관 효율화’ 10년의 대가
이윤 추구 정책에 30% 이상 외주화
운행 선로 늘었지만 예산·인력 줄어
철도정책 거버넌스 구조 무너져
국토부·코레일·철도노조 갈등 심화
공공성 살릴 총괄적 정책구조 시급
지난 8일 강릉선 선로를 이탈했던 케이티엑스(KTX) 열차는 만 이틀 만에 운행을 재개했지만 철도 안전에 대한 의구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을 도외시한 공공기관 효율화의 그늘이 짙은데다, 철도 수송에 관여하는 유관기관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열차 운행과 선로 건설을 구분한 ‘상하분리’ 정책을 철도 안전을 위협하는 첫째 원인으로 꼽는다. 열차를 운영하고 선로를 유지보수하는 코레일과, 선로를 시공하고 소유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시설공단)이 분리돼 있어 안전관리가 이원화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철로와 인접한 철도보호지구(30m 이내)의 경우 소유권을 보유한 공단이 1차 관리 권한을 갖지만, 안전점검 인력은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에 배치돼 있다.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미스매칭’이 발생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 기관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면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코레일은 오송역 단전사고 당시 “철도시설공단 승인을 받고 시행된 공사 중 부실로 전선로에 문제가 생겼다”며 시설공단의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 시설공단과 시공 주체였던 충청북도는 이에 “코레일에 공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두 기관은 책임 소재를 따지기 위해 소송전을 벌이게 됐다.
이번 강릉선 탈선 사고의 1차 원인으로 지목된 선로전환기 오작동을 두고도 두 기관은 물밑에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선로전환기의 오류 신고 회선이 애초 잘못 시공됐는지 유지보수 과정에 잘못 연결됐는지에 따라 두 기관의 책임 소재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와는 관계없지만, 수서고속철도를 운영하는 에스알(SR)에서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갈등구도는 더 복잡해진다. 에스알은 열차의 수선과 유지보수, 관제를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기 때문에, ‘운행, 열차 및 관제, 선로’의 삼각구도 아래에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최근 빈발하는 철도사고는 지난 10년여 동안 진행돼온 ‘공공기관 효율화’의 대가라는 시각도 있다.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과 이윤 추구만을 강조한 결과, 안전과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뒷전에 몰렸다. 코레일이 운행하는 선로는 2015년 8465㎞에서 2017년 9364㎞로 늘었는데, 정비 예산과 인력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코레일의 인력은 2008년 3만910명에서 2018년 2만6321명으로 4천여명 줄었다. 대신 외주화 비율은 급증했다. 2010년 6983명(현원 대비 23.3%)이었던 외주화 비율은 2016년 8196명(현원 대비 30.8%)으로 늘었다. 특히 코레일은 철도 시설과 전기, 차량 유지보수 및 관리 등 안전 관리에 핵심적인 업무를 자회사와 민간업체에 맡겼다.
총괄적인 철도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가 상실된 점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철도민영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산하기관인 코레일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잦았다. 철도노조와 코레일 경영진의 갈등의 골도 깊었다. 또 시설공단은 관제권 회수 등 입지 강화를 위해 국토부의 ‘이중대’ 노릇을 맡았고,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탄생한 에스알은 강남권을 운행하는 ‘알짜노선’만 차지하고 있다. 철도 안전을 위해 협조해야 할 기관들이 잇속에 따라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고 원인은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밀어붙인 철도민영화 정책으로 안전 역량이 약화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재발방지 및 안전확보를 위해 정부 지원이 증대돼야 하며 종합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짚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원은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중심을 잡고 거버넌스 회복에 주력해야 하는데, 철도민영화를 추진했던 관성이 아직 직업 관료들의 디엔에이(DNA)에 남아 있는 듯하다”며 “민간과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철도총회를 열어 상하통합을 결정한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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