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완화 방안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예타 문턱을 낮췄는데, 세금 낭비 사업을 걸러내는 예타 취지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및 제도 합리화 차원에서 기준을 변경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앞으로 전국이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을 것인지, 국토 균형발전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는 정부가 후속 대책을 얼마나 꼼꼼히 세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번 개편안의 요지는 그동안 ‘경제성’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던 비수도권 사업은 ‘경제성’을 줄이고 ‘지역균형’ 점수를 더 많이 반영하고, ‘지역균형’ 평가에서 불리했던 수도권은 이 항목을 없애고 ‘경제성’ 평가 반영 비율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각자 불리한 과목의 배점 비율은 낮추고 유리한 과목의 배점 비율은 높여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번 개편안이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한 예타 제도의 취지를 훼손했다고 비판합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경제성 평가 비중을 지나치게 낮춰, 경제적 타당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업이 정책 평가라는 정무적 판단으로 추진될 수 있다. 예타 취지에 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지자체에서는 ‘예타 완화’로 지역 개발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역균형발전’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입니다. 어느 지역에 살든 최소한의 기반시설은 골고루 누려야 합니다. 여기에 경제성 잣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경직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타 제도는 김대중 정부가 1999년 공공사업예산 절감을 위해 도입했습니다. 초기에는 경제성(B/C) 평가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은 높은 점수를 받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방은 탈락한다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예타제도는 이런 요구가 반영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2003년 평가 항목에 ‘정책성’이 새로 추가됐고, 2006년엔 ‘지역균형발전’ 항목이 포함됐습니다. 경제성 평가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정책성·지역균형발전 평가 비중은 늘어난 것이죠. 이번 개편은 그런 취지를 더욱 강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논란도 일으켰습니다. 경인아라뱃길 등 예타를 통과하고도 활용성이 낮아 애물단지가 된 사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예타 면제 규정에 ‘재해예방’, ‘지역균형발전’ 등 5가지를 추가해 예타를 피해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는 거셌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도 지난 1월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전국 23개 사업의 예타를 면제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전 정부와 다른 게 뭐냐’고 비판받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이 시점에서 예타 완화 방침을 밝힌 의도도 의심받고 있습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할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결국은 토건사업으로 경기부양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 현안 사업의 예타 통과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는 겁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토건사업으로 단기 일자리 증가와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코 지속적인 정책이 아니다.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대다수 수혜는 재벌 건설사들이 누릴 뿐이다. 막대한 세금 부담으로 청년층의 미래를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정부가 진정 ‘균형발전’ 가치를 생각한다면, 각 지역의 개발사업을 쉽게 풀어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은 “인프라를 이용할 기업이 지역으로 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주변 지역과 연계된 광역 단위의 발전계획 없이 무조건 사업을 허용하는 것은 균형발전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받는 수도권의 경우 심사의 60~70%를 차지하는 경제성 평가 기준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예타 제도와 함께 도입된 ‘건설공사 사후평가제도’를 더 강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준공 뒤 5년 이내에 사업 성과·효율성·파급효과 등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예타 기준을 완화한 만큼 ‘예타 면제’는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습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하고 사후에도 면제의 타당성을 따져보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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