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태우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서울역앞 택시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택시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판결.”
“대한민국의 택시회사는 한곳도 남지 않게 될 것.”
지난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택시회사의 택시노동자 소정근로시간 축소를 무효라고 판결하자, 택시 노사가 각각 내놓은 반응이다. 고정급 책정 기준인 소정근로시간을 줄인 것은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법인택시기사 10만명 대부분에게 적용된다. 이들 모두가 택시회사를 상대로 못받은 임금을 청구할 경우 소가는 조 단위에 이를 전망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택시기사 월급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 법안은 지난달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 합의에 따라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이번 소송의 뿌리는, 2009년 개정 최저임금법 시행에 있다. 법인택시 노동자의 월급은 고정급과 초과운송수입금으로 크게 분류된다. 택시노동자가 승객에게 받은 요금 가운데 사납금을 빼고 남은 것이 초과운송수입금이다. 원래 초과운송수입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됐지만 2009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제외됐다.
당시 법 개정 취지는 택시기사의 임금에서 차지하는 초과운송수입금의 비중을 낮추려는 것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문에도 나온다. “사납금제로 인해 생계를 보장하는 수준의 월급을 지급받는 것을 기대할 수 없어 택시노동자의 생활기반이 불안정하게 되고, 초과운송수입금 확보를 위해 난폭운전·승차거부 등 무리한 운행을 함으로써 일반국민의 안전과 운송질서를 저해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고정급 비중을 높이도록 유도하면, 택시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운송수입을 모두 회사에 가져다주고 여기서 월급을 받는 ‘전액관리제’가 정착된다. 택시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택시회사들은 취업규칙 변경과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실제 근로시간은 그대로 둔채 고정급 책정의 기준이 되는 소정근로시간을 줄이기 시작했다.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소정근로시간이 서울은 5시간30분, 울산은 2시간에 불과한 상황이 벌어졌고, 이번에 대법원은 이런 소정근로시간 축소가 무효라고 못박은 것이다.
법인택시 사업자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법 시행 이후 소정근로시간이 단축된 택시노동자의 경우 3년치 임금채권이 생기고, 이를 택시노동자 10만명으로 단순 계산해도 1조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통상 택시시장 규모인 연간 8조원을 넘어서는 상당한 액수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대법 판결 이튿날 비상총회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택시를 차고지에서 가져나간 이후 택시노동자에 대한 구체적 지시감독이 불가능한 택시산업의 현실을 무시한 판결로 여기에 버틸 수 있는 택시회사는 없다”며 “노조 쪽의 움직임을 보며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조 쪽 입장은 다르다. 민주노총 민주택시노조 관계자는 “디지털운송기록장치와 택시운행관리정보시스템이 구축돼 실노동시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관리감독을 안 해 기형적 구조가 지속돼왔다”며 “하루 속히 국회가 택시월급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소정근로시간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단체교섭 요구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이미 택시월급제를 논의 중이다.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근로시간에 부합하는 월급제 시행’을 합의했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의해왔다. 대법원이 “사납금제가 아닌 월급제가 택시노동관계에서 적정한 임금체계라는 것에 대해서는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두 말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법 개정 필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도 월급제의 중요성이 입증됐고, 노사간 분쟁과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조속히 법안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개정안 통과 시점은 불확실하다. 법인택시 사업자들이 대타협 기구 합의와 달리 “월급제 관련 법안 의결을 보류해달라”고 국회에 의견서를 내는 한편, 자유한국당 등 주요 야당 의원들이 법인택시 사업자들의 논리를 들어 법안 통과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열린 교통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국토부는 서울·광역시(대구 제외)는 내년 1월부터,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는 2021년부터 월급제를 시행하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법인택시 사업자들의 논리를 들어 반대해 논의가 마무리되지 못했다.
김상훈 한국당 의원은 “월급제를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추진하게 될 경우, 지방에 있는 택시운수사업자는 공멸의 위기에 처한다”며 패키지로 논의되던 ‘카풀 시간제한 법안’ 먼저 처리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경욱 한국당 의원은 운송수입금이 다른 도시에 견줘 떨어지는 대구가 내년 시행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대구시가 아닌 다른 의원들은 ‘왜 여기에 예외가 있느냐. 우리는 왜 안들어갔느냐’ ‘당신은 거기 앉아서 뭐했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월급제는 재정적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누구도 보장을 못하는 것으로, 보장 못하는 것을 법적으로 박을 수 있느냐”며 재정지원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정지원 의견에 대해 “이번 사안은 2009년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직후부터 택시회사들이 적정한 임금체계를 만들어 운영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로 여기에 국가 재정을 지원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택시 수익성 개선을 위한 규제개선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재정지원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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