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국가채무비율이 40%냐, 또는 50%냐는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다.”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한테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촉발된 국가채무비율 논쟁에 대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40%라는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대신 그는 ‘안정성’을 기준으로 들었다. 특정 숫자에 얽매여 논란을 벌이기보다는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상승에 따른 파급효과를 안정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지, 또 재정 확대를 통해 어떻게 저출산·양극화 같은 구조적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국가채무비율 40% 기준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게 아니라, 재정 운용의 과정에서 경험적으로 축적된 ‘심리적 저항선’에 가깝다는 것이 재정당국의 설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재정의 역할이 강조됐고, 박근혜 정부 들어선 기초연금 도입 등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면서 재정 지출이 꾸준히 늘고 덩달아 국가부채비율도 꽤 가파르게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채택된 실무적 마지노선이 40%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경제 상황과 재정 건전성, 고령화 추세 등을 고려해 재정 적자폭 등을 결정하게 된다”며 “국가채무비율의 증가세가 컨트롤되는 상황이라면 40%를 넘겨도 상관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판단하기 위한 지표)의 추이를 보면, 이명박 정부 이후 모든 정부는 상당폭의 재정적자를 감내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재정수지가 국내총생산(GDP)의 -4.1%로 최근 10여년 사이 적자폭이 가장 컸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에도 -2.4%를 기록한 바 있다. ‘메르스 사태’ 등 경기 둔화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관리재정수지상 적자 비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 -0.6%, 2019년 -2.0%(예산안 기준)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확대 재정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긴축 재정 정책을 하는 바람에 과거 보수정부보다 재정 건전성이 나아졌다는 논란이 불거진 까닭이다.
※ 그래픽을(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채무비율을 무한정 늘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달러·유로화 등 국제 금융거래에 활용되는 기축통화 발행국도 아니다. 대외 신인도의 주요한 판단 근거인 국가채무비율을 마냥 무시할 순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대외 신인도 저하에 따른 외환위기 경험이라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국가채무비율의 상한은 60~70% 수준이라는 것이 재정학자들의 컨센서스”라며 “고령화에 따른 재정 지출의 자연증가 등을 고려하면 정부가 임의적으로 늘릴 수 있는 국가채무비율의 최대치는 50%대 정도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39.5%·추경안 기준)이 미국(107%)과 일본(220%)을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의 평균치(113%)보다 건전하다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한국의 재정 여력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은 최상위권에 두고 있다. 여기에 국제적인 저금리 추세의 영향으로 한국의 국채 이자율은 1%대 후반에 머무르고 있다. 3%대에 이르는 경상성장률(경제성장률+물가)을 고려하면 국채 발행에 뒤따르는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최근 5년여 동안 국가채무가 200조원 가까이 늘었지만 이에 따른 이자 부담은 오히려 줄었다는 게 재정당국의 설명이다. 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는 “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정책이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비율 40%라는 숫자에 갇힐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의도치 않게 불거진 이번 논쟁이 재정의 역할에 대한 생산적 논의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한국 경제가 부진의 늪에 빠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적 문제”라며 “확장적 재정 운영을 통해 공공이 주거, 교육, 양육, 노후 등의 문제에 답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런 해답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증세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유찬 조세재정연구원장은 “근본적인 경제·사회 구조 전환을 위해서는 더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국가채무비율의 확대와 조세부담의 공평성 개선 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단기적 경기부양을 넘어선 재정의 역할을 모색하되, 그 지속가능성을 위한 증세 논의에도 물꼬를 터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현웅 이경미 기자
goloke@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