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열리지 않아 추가경정예산안이 47일째 발목 잡혀 있는 가운데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3개월째 경기가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앞서 청와대도 경제 회복세 지연 우려를 공식화하고 나선 바 있어, 정부가 재정 확대 등을 통해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장기침체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케이디아이는 10일 발표한 ‘6월 경제동향’에서 “내수가 둔화하는 가운데 수출이 위축되는 모습을 유지하는 등 전반적인 경기 부진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경기 ‘부진’을 처음 언급한 뒤 석 달 연속 경기 부진 판정을 내린 것이다.
케이디아이는 “4월 반도체·자동차 중심으로 감소 폭이 일부 축소되고 서비스업 등 생산 증가 폭이 확대됐지만 조업일수 변동을 고려하면 생산 증가가 추세적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또 5월 수출은 세계경기의 둔화 추세가 지속되면서 반도체, 석유류 등을 중심으로 감소 폭이 확대됐고, 건설투자를 포함한 전반적인 설비투자 흐름도 부진한 모습이라고 짚었다.
최근 경기지표 추세를 보면 수축 국면인 우리 경제가 하강해 저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추세가 그 근거로 꼽힌다. 지난해 6월부터 지난 3월까지 10개월 연속 동반 하락하던 두 지수는 지난 4월 하락세를 멈췄다.
문제는 하반기 경기 반등 여부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중 무역갈등 격화 및 글로벌 교역 감소 등 대외 여건이 경기 상승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기가 바닥에서 반등하지 못하는 엘(L)자형 침체 장기화 우려 전망도 나온다. 배민근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반도체 경기 하락,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 저물가 등 구조적인 문제로 하반기에도 경기가 반등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설사 2~3분기에 일부 지표가 좋아지더라도 전반적인 경기 (부진) 흐름은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와 같은 경기 국면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9일 발표한 경제주평에서 “경기 저점은 올해 2분기 근처가 되고 현재 경기 국면은 회복과 침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판단된다”며 정부가 취해야 할 대응책으로 △신산업 발굴 노력 △금리 인하 △추경안의 조속한 통과와 감세정책 △규제개혁 등을 주문했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늦어질수록 하반기 경기 반등은 더 어려워진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4%를 기록한 주요인은 정부 부문 기여도가 -0.7%포인트로 떨어진 것이다. 1분기에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예산의 집행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으로 분석된다. 각 지자체가 새로 사업계획을 세워 추진하면서 진행이 예상보다 느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했던 추경도 ‘실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제때 집행할 경우 경제성장률을 0.1%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타이밍’이 중요한 추경안은 국회에 제출된 지 47일째 심의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경기 회복 가능성을 언급했던 청와대가 경기 하방 위험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7일 기자 간담회에서 “성장세의 하방 위험이 장기화할 소지가 있다”며 추경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