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열린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포럼’에서는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공공기관과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사회적 가치 실현과 확산을 위한 과제와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공공기관이 본래의 설립 목적이기도 한 사회적 가치를 공공기관 경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어려움과 혼선이 적지 않다. 개별 공공기관마다 설립 배경과 목적, 주요 사업 등을 실현하는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국가 재정 기여라는 사명과 공동체 윤리 사이에 갈등을 빚기 쉽다. 이밖에도 또 하나의 평가 잣대만 덧붙여지는 게 아니냐는 의심어린 시선, 시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만 증가할 뿐이라는 우려 등 풀어야 할 매듭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공동체와 미래세대까지 끌어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5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는 공공기관들이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고 확산시킬지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회적 경제 주간 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이 날 포럼은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협의체가 주관했다.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협의체는 올해 2월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 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희망제작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등 사회단체들이 모여 사회적 가치 실천과 확산을 도모하기 위해 꾸린 협의체다.
이원재 랩2050 대표는 발제에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가 경제·환경·사회 영역의 다양한 가치를 균형 있게 포괄하는 조직 운영의 원칙으로서 사회공동체와 미래 세대에게 운영 성과가 귀속되도록 하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원재 랩2050 대표는 올해 5월 시행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사회적 가치로의 사회 대전환을 이루려면 공공기관의 리더십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5월 랩2050에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사회적 가치를 이끌 주체로 언론, 교육, 노동계를 제치고 정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사회 문제 심각성을 묻는 말에 ‘저출산·고령화’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으며, ‘환경오염·기후변화’, ‘일자리 부족’, ‘대기업, 중소기업 격차 심화’가 그 뒤를 이었다. 성장과 분배와 관련해 국가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묻는 말에도 ‘성장보다는 분배가 중요하다’(21.1%)는 응답이 ‘성장’(16.3%)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2018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는 분배보다 성장을 중요하다고 본 집단이 7.8%포인트 많게 나타났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이원재 대표는 “국민이 단기적인 경제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사회 성과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의 실현 주체로서 공공기관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상생협력부장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서는 선도적인 공기업을 중심으로 중소 공기업들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에도 양극화가 있다”
사회적 가치를 추진하는 공공기관 일선 현장의 어려움과 해결 과제들을 고민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양상에도 양극화가 있다”고 운을 뗀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상생협력부장은 “공기업 1군과 2군 외에 사회적 가치를 추진하는데 자원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기관들이 훨씬 많다”며, “규모가 큰 공기업들이 중소 공기업과 협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 확산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기존의 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며,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조직의 업을 재조명하고, 사회와 환경 영역에서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함께 고려하는 공공성을 추구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효율과 수익 극대화에 치우쳐 있던 공공성의 방향 추를 개인과 공동체, 미래세대를 품는 사회 문제 해결로 돌리자는 뜻이다.
공공기관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부 진단도 이어졌다. 마우성 한국철도공사 윤리경영부장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경영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공공기관은 스스로 효율적 경영 관리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수진 한국수자원공사 사회가치창출부장도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려면 공공기관 전사 차원에서의 인식과 경영 프로세스 전환이 필요하다”며 “한 기관만의 힘으로는 기대했던 사회적 성과를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평가모형 개발과 적용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오영오 한국토지주택공사 미래혁신실장은 “시중에 개발된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는 민간 기업의 편익에 맞춰 있어, 공공기관을 정확히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평가 개발과 활용에서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김영식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사무국장은 “진단이나 평가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조직 차원에서 제도화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도 민간 컨설팅 기관의 진단이나 평가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대전/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