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신용 시장이 경색되고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지면서 단기 차입금 확보에 나서는 기업들이 급증했다.
20일 금융감독원 공시를 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단기 차입금을 늘리기로 한 상장사는 56곳이다. 최근 5년 새 가장 많다. 같은 기간 단기 차입금을 늘린 상장사는 2016년 24곳, 2017년 26건, 2018년 39곳, 2019년 38곳이었다.
대다수 기업은 ‘유동성 확보’를 단기 차입금 증가 사유로 꼽았다. 코로나19로 영업활동이 타격을 받을 경우 운영자금을 비롯한 각종 현금이 고갈될 수 있어 대출을 늘린 것이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증권사들이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발행 한도를 늘렸고 구조조정 중이거나 신용등급이 A-등급 이하인 기업들은 금융기관 차입으로 현금 확보에 나섰다.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지난달 이사회 의결을 통해 각각 기업어음과 전자단기사채 발행 한도를 1조5천억원과 2조원 추가했다. 당장 차입을 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현금 조달이 필요하다 보고 발행 한도를 미리 늘린 경우다. 구조조정 중인 아시아나항공과 두산중공업은 각각 6천억원과 1조원을 브릿지론(임시자금대출)과 한도여신으로 금융권에서 빌렸다. 신용평가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아남전자와 정밀화학소재기업 케이디켐은 ‘영업활동에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 및 ‘위기관리 일환으로 충분한 중장기 유동자금 확보’ 명목으로 각각 100억원씩 금융기관에서 차입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단기 차입금 확보량을 늘리는 건 장기 자금 조달 통로인 회사채 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탓이 크다. 같은 기간 회사채 발행 현황을 보면 2018년과 2019년 27조원이었던 발행액이 올해는 25조원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회사채를 찾는 투자자가 줄면서 회사채 금리도 올랐다. 설상가상 기업어음 금리도 지난 1월 1.68%에서 17일 2.10%로 가파르게 오르면서 기업들은 단기 차입금 확보에 더 큰 비용이 필요하게 됐다. 이 때문에 롯데칠성음료 등 아예 금융기관 돈을 빌려 기업어음부터 갚는 기업도 나타났다.
기업의 단기 차입금 증가 결정은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대로 줄어들고 회사채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4월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기업들이 실물경기 침체가 최소 2분기까지 이어지리라 내다보고 비상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신호다.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가진 현금이 점차 떨어져 가는데다 생산·소비활동 감소 효과도 누적됐기 때문에 4월 이후가 더 힘들 수 있다”며 “지금은 자금 조달 경로를 전략적으로 비교해 선택한다기보다는 ‘어떻게든 조달하자’는 심리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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