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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자동차 부품공장 멈춰선 기계 “암보험 해지, 다음엔 적금을 깼다”

등록 2020-05-05 05:00수정 2020-05-05 10:34

[‘코로나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
③ 부품·하청업체
②특수고용 노동자·프리랜서
①여행·관광업계

완성차 세계시장 셧다운 여파
안산·시흥공단도 한달여 전부터 심상찮아

“갑작스런 납품중단 통보”
2·3차 협력사는 생산량 예측 못해 날벼락

“월급 반토막에 투잡 뛰다
고용보험 이중가입 문제로 회사에 걸려”
지난달 30일 코로나19 사태로 부분휴업 중인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공장에서 가공 라인 일부가 멈춰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달 30일 코로나19 사태로 부분휴업 중인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공장에서 가공 라인 일부가 멈춰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기계가 멈추니 가슴부터 철렁하더군요. 아들, 딸이 초등학생이어서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경기도 시흥에 자리잡은 자동차 엔진 부품 업체 ㄱ사에서 일하는 김아무개(39)씨는 최근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30만원 남짓이던 월급 앞자리 숫자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1’로 바뀌자 찾아간 일자리다. 잔업이 사라지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연차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만 해도 김씨는 견딜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미 반토막 난 생산량이 5월엔 더 줄어들 수 있다는 회사 관리자 말에 눈앞이 하얘졌다. 며칠 전엔 공장을 닫고 평균 임금의 70%인 휴업수당을 주겠다는 통보를 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길바닥에 나앉겠구나”라는 불안감이 덮쳤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완성차) 2차 협력사다 보니까 이번달 생산량을 미리 알기 어렵다. 다음달 통장에 얼마가 찍힐지도 모른다는 얘기”라며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치킨 배달을 시작한 동료도 여럿 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경제의 중추 구실을 하는 부품 제조업체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3월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 자동차·부품 제조업 종사자는 37만7578명이다. 사태 초기인 2월엔 중국발 부품 공급난으로 생산이 차질을 빚더니 3월부터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완성차 판매 시장이 잇달아 봉쇄조처에 들어가면서 자동차 산업에도 매서운 혹한기가 시작됐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집계한 지난달 16일 기준 주요 국가 공장 가동률은 29.0%. 주요 7개국의 1분기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7.5% 줄었다.

수출 대기업에 기댄 하청업체의 특성상 본격적인 어려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 부품업체들이 밀집된 경기도 안산·시흥의 반월·시화공단도 대략 한 달 전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와이퍼 제조업체 ㄴ사는 직원들에게 ‘무급휴직 동의서’를 내밀었다. 세계 자동차 피스톤 시장에서 점유율 4위를 자랑하던 ㄷ사도 수출용 라인을 모두 세웠다. 지난달 21일 찾은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언제부턴가 퇴근길에 차가 막히지 않는 걸 보면서 위기를 체감했다”고 씁쓸하게 털어놨다.

■ 주문 물량 100만개 한순간에 증발 1차 협력사를 통해 완성차 공장에 납품하는 2·3차 협력사들은 위기에 대비하는 것조차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완성차 공장의 생산 계획이 시시각각 변하는데다 이마저도 1차사를 거쳐 뒤늦게 통보받는다.

2차 하청업체인 ㄴ사에서 일하는 최아무개(39)씨는 지난달 중순 출근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1차 업체에서 “남은 4월 물량을 절반가량 줄여 달라”고 갑자기 통보했단다. 정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당월이 아닌 전월 매출이나 생산량이 감소한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터라, ㄴ사는 4월분 인건비 지원을 정부한테 받을 길이 없다. 회사는 결국 4월 중에 무급휴직을 실시하고, 5월에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휴업수당을 주기로 계획을 세웠다.

최씨는 “코로나 이후 잔업이 없어져 월급이 200만원도 채 안 된다. 매달 월세가 50만원, 대출 상환금은 80만원이나 된다”며 “이런 와중에 무급휴직 동의서를 내라니 울화통이 터졌다”고 토로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회사에 항의란 걸 해봤어요.” 우직해 보이는 그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정부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한다.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현재로서는 당월 실적이 나쁜 것만으로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달은 정부 지원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버티라는 이야기다.

안전벨트 제조업체 ㄷ사 직원 정아무개씨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로 미국과 유럽 등지의 부품사에 납품하는 이 회사는 지난 3월 말 “당장 다음주부터 납품을 중단해 달라”는 통보를 고객사로부터 받았다.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한때 150만개를 넘나들던 일주일 생산량은 하루아침에 30만개로 곤두박질쳤다. 매일같이 코일(자동차 부품에 쓰이는 철강재의 일종)을 싣고 오던 트럭도 자취를 감췄다. 공장 전체에 시끄럽게 울리던 프레스 기계음도 잦아들었다. 이젠 작업장 안에서 귀마개를 하는 종업원은 없다.

기계가 차례로 멈춰 설 때마다 정씨는 가계부에서 지출 항목을 하나둘 지워 나갔다. 암보험을 해지했고, 그다음엔 다달이 10만~20만원씩 꾸준히 넣던 적금을 깼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휴업수당을 받게 되자 노후 대비는 사치로 느껴졌다. 정씨는 “그나마 딸이 독립해서 상황이 낫다”며 “젊은 직원들은 애들 학원부터 끊었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더라”고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시급제에 연차 강요…너도나도 ‘투잡’ “휴업수당이라도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죠.” 플라스틱 내장재를 만드는 ㄹ사에서 일하는 임아무개씨 처지는 또 다르다. 지난달 일주일 전체휴업 기간 동안 전 직원이 연차를 쓰는 것으로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말을 들을 때 임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시급제인 임씨는 이 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터라, 월급이 말 그대로 반토막 나게 됐다. 임씨는 “공사판 일용직 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비슷한 고민 끝에 사표를 내는 직원들도 늘고 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최아무개(49)씨는 최근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다 그만뒀다. 최씨보다 앞서 ‘투잡 뛰던’ 동료들이 회사에서 경고 조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째 부분휴업과 전체휴업을 이어가는 이 공장은 휴업 기간에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70%를 준다.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최씨는 잔업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월급이 40만원 줄었다. 지난달 월급은 200만원을 조금 넘었다. 이달에는 월급이 얼마나 더 쪼그라들지 알 수 없다.

그는 “몇몇 직원들은 이미 노가다(건설 일용직)를 나가고 있었는데 고용보험 이중가입 문제 때문에 회사에 걸렸다”며 “고용보험이 없는 일자리라도 알아볼 생각을 하는 직원들도 있고, 아예 사표를 낸 직원도 4명이나 된다”고 전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의 실업급여 지급자는 지난 3월 기준으로 1만402명. 지난 1월 7891명에서 31.8% 늘어난 수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기업부터 1~3차 협력사까지 하나의 망으로 이어져 있어서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전체가 붕괴한다”고 우려했다.

■ 재고로 꽉 찬 창고…“여유 공간이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촉망받던 이른바 ‘알짜기업’들도 맥없이 스러질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ㅁ사는 엔진 피스톤 분야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점유율 4위를 자랑하는 탄탄한 업체였다. 하지만 이곳은 지난달 열흘간 수출용 라인 가동을 모두 중단시킨 데 이어 이달에도 보름 동안 부분휴업과 전체휴업을 번갈아 실시할 예정이다. 직원 황아무개씨는 “이달 휴업 계획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국내외 완성차 공장 가동 현황에 따라 휴업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쌓여만 가는 재고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벨로스(자동차에 들어가는 주름진 관)를 만드는 ㅂ업체 관계자는 “쏘렌토, 아반떼 등 내수 비중이 높은 차종 2~3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차종의 주문 물량이 ‘제로’”라며 “최근 재고가 평소의 2배 수준인 53만개 정도 쌓여서 창고에 여유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의 여파가 최소한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산업 전문 컨설턴트인 엘엠시(LMC) 오토모티브는 올해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약 20% 감소한 7100만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량 판매량은 4월에 저점을 찍겠지만 그 뒤에도 회복세가 빠르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관건은 세계 자동차 판매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국내 부품업체들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여부다. 이미 이들 부품업체의 체력은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부품 업계는 3년 전부터 하락세였기 때문에 위기를 버틸 만한 자금력 있는 업체가 별로 없다”며 “정부 지원이 늦어지면 그사이에 무너지는 업체들이 잇달아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자동차 부품 업체의 규모를 고려하면 업계의 자금난은 매우 심각한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산업연구원과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부품업체 356곳을 조사해보니 이들 업체가 올해 연말까지 필요하다고 응답한 정부 지원금은 모두 2조5천억원에 이르렀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수치라는 목소리도 있다. 부품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응답 업체들이 대부분 1차 협력사인데도 상당수가 운전자금이 부족하다고 답했다”며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2·3차 협력사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흥 안산/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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