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앞서 한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재난지원금과 대학 등록금 반환, 금융세제에 이어 그린벨트까지….’
정부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밝힌 정책 방향이 청와대나 여당에 의해 뒤집히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경제정책에서 ‘원톱’을 강조해온 홍 부총리의 리더십 훼손은 물론이고,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해제 불가’로 정리한 그린벨트 문제가 대표적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4일 한 방송에 출연해 처음으로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사흘 뒤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린벨트 해제 쪽으로) 당정 간 의견을 정리했다”며 홍 부총리와 같은 입장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그린벨트 해제 반대론이 분출하자, 문 대통령이 보존 의사를 밝히면서 그린벨트를 활용한 주택공급 추진은 없던 일이 됐다.
금융세제 개편안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5일 주식 양도소득세 도입 등을 담은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2023년부터 주식 매매로 연 2천만원 이상 이익이 날 경우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내용인데 개인투자자들의 비판 여론이 거세자,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투자 의욕을 꺾어서는 안 된다”며 세 부담 완화를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청와대에 보고하고 발표한 금융세제 개편안을 대통령이 뒤늦게 수정 지시를 한 것을 두고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앞서 지난 5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홍 부총리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지급하자고 했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이에 동의했지만, 결국 청와대 정무라인과 민주당이 주장한 전 국민 지급으로 바뀌었다. 대학 등록금 반환에 따른 정부 지원도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은 반대했지만, 국회 심의를 거치며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2천억여원이 반영됐다.
홍 부총리가 추진이나 반대 의사를 밝혔다가 뒤집힌 사안들은 세제·예산·정책 조정 등 기재부의 핵심 기능과 관련한 정책들이다. 결국 이들 분야에서 홍 부총리가 밝힌 정책 방향이 번번이 뒤집혔다는 것은 청와대 또는 여당과의 정책 조율 과정에 이상기류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청와대 정무라인과의 불협화음이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한편, 문 대통령은 21일 홍 부총리에게 최근 경제 상황과 내년도 예산안 관련 보고를 받고 “힘 있게 추진하라고 격려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비롯해 잇단 정책 혼선으로 난처한 상황에 처한 홍 부총리에게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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