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19일 미국 애리조나주 애리조나퍼블릭서비스(APS)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한 이후 내부 모습. 에이피에스 제공
지난해 4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책임을 두고 제조사인 엘지(LG)화학과 전력회사 애리조나퍼블릭서비스(APS)가 정면 충돌했다. 에이피에스가 배터리 결함을 화재 원인으로 지목하자, 엘지화학도 보고서를 내어 에이피에스 쪽의 관리 부실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국내에서 잇단 에너지저장장치 화재를 둘러싸고 정부와 배터리 업계가 책임 공방을 벌인 데 이어, 국외에서도 논쟁이 불붙는 모양새다. 당시 애리조나주 화재로 현지 소방관 4명이 다쳤다.
3일 엘지화학이 <한겨레>에 제공한 자체 보고서를 보면, 엘지화학은 “(에이피에스의 주장과 달리) 리튬 석출물이 화재를 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에이피에스는 지난달 18일 애리조나기업위원회(ACC)에 제출한 자체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배터리 내부에 쌓인 리튬 석출물을 지목한 바 있다. 두 기업은 지난해 화재 이후 각각 컨설팅 업체를 통해 1년여간 자체 조사를 벌여왔는데, 양쪽이 정반대의 결론을 낸 것이다. 엘지화학은 지난달 30일 에이피에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162쪽짜리 보고서를 애리조나기업위에 제출했다.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15번 랙의 모습. 엘지화학 제공
엘지화학이 보고서에서 든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리튬 석출물이 화재를 일으킬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건 맞지만, 화재 당시 전류와 전압의 추이를 보면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리튬 석출물은 배터리가 충전과 방전을 거치며 쌓이는 물질로, 지나치게 커지면 셀 내부 분리막을 찢고 단락을 일으켜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엘지화학은 “화재 당시 7번 모듈과 8번 모듈 사이에서 4.9A의 방전 전류가 측정됐는데, (에이피에스 주장대로) 셀 내부 단락이 발생했다면 0A였어야 한다”며 “4.9A는 2개의 회로가 단절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 결함보다는 외부 충격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화재를 초기에 막지 못한 데 대해서도 “환기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인화성 가스가 내부에 갇힌 것”이라며 “(이는) 엘지화학이 아닌 다른 당사자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사실상 에이피에스 쪽의 관리 부실에 무게를 둔 것으로, 에이피에스가 화재의 핵심 원인으로 배터리를 지목한 것과는 정반대의 주장이다. 앞서 에이피에스는 보고서에서 “15번 랙, 2번 모듈에 있는 7번째 배터리 셀에 내부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임의로 조사한 배터리 셀에서도 리튬 석출물과 덴드라이트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에이피에스에 공급한 배터리가 엘지화학 ‘생산 1번지’인 오창 공장에서 생산된 것인 만큼 배터리 결함이 화재 원인으로 밝혀지면 엘지화학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엘지화학 배터리가 쓰인 국내 에너지저장장치 중 불이 난 15곳은 1곳을 제외하고 2017년 중국 난징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공급받았다. 올해 초 엘지화학은 국내 에너지저장장치에 쓰인 2017년 난징산 배터리를 모두 교체해준 바 있다. 엘지화학은 국내 화재 보상에 총 4000억여원이 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애리조나기업위는 양쪽 조사 결과를 종합한 뒤 내년에 최종 결론을 내게 된다. 엘지화학 관계자는 “우리 쪽 자체 조사에서는 아직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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